[시론/임성호]풀뿌리 선거 훼손하는 이익단체들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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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그런데 국민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슈퍼맨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유치원생이 모든 일에 엄마를 찾고 졸라 대는 것처럼 현안마다 정부를 쳐다보며 내 요구대로 일을 풀어 달라고 외쳐 댄다. 특히 선거 때면 입후보자들에게 각종 무리한 민원성 부탁을 하며 당선 후 정책에 반영해 달라고 압력을 넣는다. 정부는 정말 슈퍼맨인 양 사회 현안마다 간섭주의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이상에 따르면 시민은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상호 이성적 대화로 의견을 조율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시민 스스로 그러한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중재자로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나서야 한다. 모든 일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시민의 적극성을 억누를 수 있다. 선의의 온정적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간섭하는 정부는 참여하는 시민상(像)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이익단체가 민주주의 이상을 훼손하고 있다. 수많은 현안에 걸쳐 집단이기주의적인 요구를 입후보자들에게 무차별로 보내고 있다. 이익단체들의 요구 중 정당한 것도 상당수에 이르겠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도 많다.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의 권한도 아닌, 그리고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공약 제안이 밀려들고 있다. 시민은 졸라 대기만 하고 스스로 조율할 능력은 갖추지 않은, 그래서 선거 후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피동적 존재로 스스로 전락해 버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는 전례 없이 정책공약 대결로 나아가며 새로운 선거 풍토를 보여 주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사가 매니페스토(참공약) 검증 작업을 실시하고 있고, 이에 부응해 입후보자들도 정책공약 개발에 힘쓰고 있다. 정책 외적 요인을 둘러싼 대결은 상대적으로 줄었고, 유권자들도 인신공격, 비리 폭로, 말꼬리 잡기 등 구태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그 이면에는 공약 제안이라는 이름 아래 이익단체들이 무분별하게 민원성 요구를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이익단체들의 요구 증가가 곧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뜻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절한 이익 요구와 무조건의 집단이기주의적 요구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후자는 좁은 특수이익이 넓은 공공이익에 우선하는 병폐를 가져올 뿐 아니라, 정부(중앙정부뿐 아니라 이제는 지방정부까지)가 온갖 현안에 간섭하며 권한을 확대하고 반대로 시민사회는 정부 결정에 의존하는 종속적 존재로 위축되는 위험성도 수반한다. 또한 정부에 대한 기대가 과도해짐으로써, 정부에 과부하가 걸려 거버넌스가 힘들어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기대 수준이 높을수록 거버넌스가 힘들고 기대 수준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져 결국 정부 불신감이 심화된다는 점은 과거의 경험이 잘 말해 준다.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숙해질 때가 되었다. 이익단체들은 무리한 요구로 정부의 권한과 간섭주의 태도를 더욱 키우지 말고 의존적 모습을 버려야 한다. 입후보자들은 표만 의식해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함으로써 선거 후 거버넌스를 망쳐선 곤란하다. 그러나 단기 이익에 급급한 이익단체들과 입후보자들이 이러한 충고에 귀 기울이기 쉽지 않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다. 유권자가 여론과 표로써 집단이기주의적 요구의 과도함과 입후보자들의 영합적 행태를 막아야 할 것이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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