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이삭 줍는 여당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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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선 전 인천시장은 정당 경력이 다채롭다.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한 번은 민자당(현 한나라당), 또 한 번은 자민련 공천으로 시장에 당선됐다. 그가 어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5·31지방선거에 인천시장 후보로 나서 달라고 여당이 끌자 응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제주지사 후보로 김태환 현 지사에게 눈독 들이고 있다. 제주도당이 이미 후보로 선출한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이 성에 안 차서다. 국민회의 한나라당 등을 오갔던 김 지사는 한나라당이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을 영입하자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공언한 상태다. 열린우리당의 대전시장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된 염홍철 현 시장의 친정도 한나라당이다.

새 정치와 개혁을 외쳐 온 여당이다. 요즘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 장사’를 비난하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정당이라고 내세운다. 하지만 지방선거 공천 작업을 보면 그 주장이 얼마나 위선(僞善)인지 실감하게 된다. 부패정당이라고 공격해 온 한나라당 출신 인사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끌어 모으고 있지 않은가.

열린우리당 공천이 사실상 확정된 기초단체장 후보 중에 서울 송파구 이유택 현 구청장, 충북 충주시 권영관 전 충북도의회 의장, 충북 음성군 이원배 전 음성농협조합장, 충북 괴산군 노명식 전 괴산읍장 등이 한나라당 출신이다. 한나라당에서 건너간 열린우리당 기초·광역의원 후보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후보 경쟁이 붐비고, 열린우리당은 한산한 ‘양극화 현상’ 때문이다. 다른 당 공천을 노렸다가 실패한 사람을 이삭줍기하듯 끌어들이는 것은 당명이 ‘열린우리당’이라서인가.

당내 경선(여론조사 포함)에서 진 사람은 당해 선거에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지난해 신설됐다. 우리 정치를 얼룩지게 했던 경선 불복(不服)의 재연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규정을 피해 가려고 아예 경선이나 공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당을 떠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국의 선거 판이 탈당·입당 러시다. 서울 중구의 경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서로 상대 당 출신을 구청장 후보로 내세우는 ‘후보 스와핑’까지 했다.

문제는 당적(黨籍) 바꾸기를 경계해야 할 정당, 특히 여당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에 이길 수만 있다면 과거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당의 정체성이나 이념은 간 곳이 없다. 다른 정당을 기웃거리는 ‘철새 인사’들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몸담았던 정당에 대한 일방적 계약 파기이자,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위를 뒤엎는 자기부정이다. 특히 선출직 인사가 당적을 바꾸는 것은 정당을 보고 표를 찍어 준 유권자를 배신하는 일이다.

매년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는 일상적 보조금 284억 원과 별도로 같은 액수의 선거 보조금까지 지급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110억 원,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은 각각 15억∼20억 원을 곧 선거비용으로 받게 된다.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며 선거란 선거는 다 출마하는 ‘정치 이삭’과 그런 사람을 끌어들이는 정당의 선거비용까지 세금으로 막아야 하는 걸 생각하면 납세자는 화가 난다. 표(票)로 매운맛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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