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자,가족문화]<1>아빠가 TV를 껐다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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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월이다. 해마다 맞는 5월이지만 이번 ‘가정의 달’을 우리 가족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기회로 만들면 어떨까. 더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

남자들에게 담배보다 끊기 힘든 것, TV다. 좋아하는 이승엽 선수의 야구도 보아야 하고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축구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준 낮다’는 마누라의 눈총도 불사하면서 오락프로그램의 시시껄렁한 얘기에 아이들과 똑같이 키득거리기도 한다. 그래야 직장일로 쌓인 온갖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믿으면서.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김종진(44·경기 용인시 수지구) 씨도 TV를 끼고 사는 전형적인 ‘소파족’이었다. 주중에는 오전 6시 출근해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바쁜 아빠지만 가족들과 제대로 얼굴을 대하는 주말에도 피곤을 이유로 TV와 소파를 벗 삼아 지냈다.

그러던 그가 작년 3월 초 우연히 TV의 해악을 다룬 책을 읽은 뒤 생각을 바꿨다. 무심한 부모의 TV 시청이 아이들의 학습부진, 창의력 저하, 소아비만 등을 초래한다는 지적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TV 채널 돌리는 재미에 사는 자신처럼 될 것 같다는 절박감에 TV시청을 아예 끊었다.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에 대해 아내와 아이들도 대환영했다. 이들은 아무도 안 보게 된 TV를 기부해 TV시청료까지 면제 받은 철저한 ‘No TV’가족이 됐다.

○ TV 안 보면 아내-아이가 보이죠

“저 자신부터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TV를 끊기 전에는 책을 1년에 한두 권 읽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한 달에 보통 20권 정도 읽거든요.”

김 씨의 다독은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다. 고객관리 차원에서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두 시간 반씩 고객들에게 친필로 편지를 쓰는 김 씨는 전에는 쓸 말이 없어 머리에 쥐가 났는데 지금은 하루 열 통까지도 술술 잘 쓴다.

TV가 사라지자 아내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부부 대화에도 생기가 돌았다.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 여섯 살 세 자녀의 친구 이름을 하나도 모르던 김 씨가 요즘은 맏딸이 반에서 몇 번인지도 알고 아이들 일이라면 두루 꿰게 된 것도 큰 변화다.

김 씨는 “아내와 많은 생각을 나누고 아이들의 꿈이 뭔지 알고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는 지금이 정말 좋다”며 “굳이 그렇게까지 TV를 끊을 필요가 있느냐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의 우리 가정을 지켜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 금단현상, 6개월만 참으세요

맞벌이 부부인 송진우(38·회사원) 전은영(35·경기 성남시 은행동) 씨 부부도 TV를 끈 지 거의 1년이 되었다. 어린이집 교사인 전 씨가 ‘TV 안 보기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 집 TV는 거실에서 창고로 옮겨지는 신세가 됐다.

마지못해 아내 뜻에 따랐던 남편 송 씨는 심한 ‘금단현상’을 겪었다. 평소 퇴근 후에 오락프로그램을 즐겼는데 TV가 없어지자 집안에서 왔다갔다, 안절부절못하면서 스포츠신문을 사오기도 하고 PC방을 찾기도 했다. 어느 날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TV를 들고서 이방 저방을 다니며 TV 안테나선을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아이들과 유치하게 채널다툼까지 벌였던 남편이 TV를 끊고 6개월이 지나자 스스로 책을 사들고 오면서 독서광으로 변모했어요.”

전 씨는 “지금은 아이들 잠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주말이면 이불놀이 같은 즐거운 놀이로 남편과 아이들이 훨씬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고 전했다.

○ 작은 변신도 큰 변화를 몰고 온다

TV를 ‘끊지’ 않더라도 줄이는 것만으로도 아빠와 가족 간의 거리는 좁혀진다.

회사원 이준수(43·경기 광명시 하안동) 김연진(40·대학강사) 씨 부부는 큰아들(중 2)의 시험기간에는 TV를 끄고 살기로 했다.

올해부터 정기적으로 TV 안 보는 기간을 갖기로 한 이 부부는 요즘 큰아이 시험을 앞두고 TV 시청 대신 둘째 아들(초등 5)과 근린공원 산책도 가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아빠가 짬짬이 아이들 공부까지 봐주고 있다.

김 씨는 “그동안 남편 때문에 TV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잠시나마 남편의 생활이 변했고 아이들도 함께 달라졌다”고 기뻐했다.

새내기 맞벌이 부부에게도 TV 시청은 방치할 수 없는 과제다.

회사원 류창원(30·경북 경산시 옥산동) 김은정(30·유치원교사) 씨 부부는 15개월 된 아이를 대구의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아이를 데려오는데 아이가 TV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

김 씨는 “그림책을 읽어 주려는 아빠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TV’만 보는 아이에게 남편이 꽤 충격을 받은 거 같다”며 “남편은 요즘 집에만 오면 습관적으로 TV를 켜던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 진정한 휴식은 가족과 함께

TV안보기시민모임의 서영숙(숙명여대 교수) 대표는 “아빠의 변화를 위해 엄마도 변해야 한다”며 “아빠가 퇴근했는데 연속극에만 정신이 팔린 엄마는 ‘소파족’인 아빠를 만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대부분 남편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라며 “가족에게 왕따 당하는 슬픈 중년 남자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지 않다면 집에 있는 짧은 시간이나마 TV를 끄라”고 충고했다.

‘TV는 먼 곳에, 사랑은 내 곁에’란 표어와 함께 5월 1∼7일 제3회 TV 안 보는 주간 행사를 갖는 TV안보기시민모임은 어린이날인 5일 서울 용산가족공원에서 ‘TV안보기가족잔치’행사를 연다. cafe.daum.net/notvweek

박경아 사외기자 kapark0508@hotmail.com

TV 안 보기 이렇게 하자

① 가족 구성원 간 TV 안 보기에 대한 공감대를 만든다. ② 눈에 보이도록 선언문을 만든다. ③ 거실에 놓인 TV를 구석 자리 혹은 방으로 옮기거나 천으로 덮는다. ④ 거실을 도서관이나 놀이 공간으로 꾸민다. ⑤ TV 시청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대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⑥ TV 시청 시간이 긴 주말의 유혹에 대비한다. ⑦ TV 뉴스를 꼭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다. ⑧ 정기적으로 TV 안 보는 날을 갖는다. ⑨ TV를 시청할 경우 TV 시청을 하루 1시간 이내로 제한한다. ⑩ 적어도 식사 시간에는 TV를 끈다.

자료: TV안보기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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