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자, 가족문화]<2>엄마는 공부 중

  • 입력 2006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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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학위를 따지 않아도 좋다. ‘공주’(공부하는 주부)가 된 엄마들은 공부를 하면 자기 계발도 되고 가족 분위기도 좋아진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꼭 학위를 따지 않아도 좋다. ‘공주’(공부하는 주부)가 된 엄마들은 공부를 하면 자기 계발도 되고 가족 분위기도 좋아진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범, 어멈 공부하는 것 많이 도와줘. 능력될 때 배워두면 다 쓸데가 있겠지. 여자라고 집에만 있기에는 세상이 많이 변했잖아.”

80세를 넘긴 시어머니의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도 늦깎이 미술학도 임근희(49·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씨에겐 든든한 힘이 된다.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그림 공부. 시어머니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수도 있으련만 임 씨의 시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에게 며느리 뒷바라지를 부탁하곤 한다.

“지난해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어머님이 제일 기뻐하셨어요. 올해 초에는 뻔한 월급쟁이 생활에 혹여 등록금 못 낼까봐 계(契)까지 주선해 미리 타도록 도와주셨고요.”》

○ 가족의 지지는 필수

“멍청하게 앉아서 TV 드라마에 눈을 박고 있거나 남편 자식의 귀가만 기다릴 수 있나요?”

‘공주’(공부하는 주부)가 늘고 있다.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가 전부였던 주부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계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공부하는 사연도, 공부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확실한 실력을 갖추고 자격증을 따서 일자리를 찾기 위한 실속파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처 이루지 못했던 고학위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만학도도 있다.

한국디지털대에 따르면 2005학년도에 2.2%에 불과하던 주부의 비율이 2006학년도에는 7.9%로 대폭 늘어났다. 온라인대학의 특성상 주부들이 인터넷으로 공부하기 쉽기 때문.

물론 임 씨처럼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적잖다.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기르면서 임 씨가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뿐 아니라 아내의 공부를 일로 인정해 주고 적극적으로 뒷바라지 해 준 남편의 도움이 컸다.

“아이들 공부는 물론 학원 알아보는 일, 그리고 일찍 들어오는 날은 아이들 간식까지 남편이 챙겨 주었어요. 그 덕분에 요즘은 제 도움 없이도 닭갈비, 칼국수 같은 요리도 척척 해 내요.”

임 씨의 남편 김일기(49) 씨는 “아내의 공부를 단순한 취미가 아닌 자기 일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협조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2년째 독서지도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주부 윤태희(42·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씨도 “처음에는 ‘얼마간 하다 말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남편이 점점 깊이 공부하는 내 모습에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며 “남편이 나의 공부와 일을 존중해 주면서부터는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 했다.

경험자들은 공통적으로 주부가 공부를 시작하면 △주부 자신의 자긍심과 만족도가 높아지고 △자녀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며 △가정의 분위기가 건강하게 바뀐다고 지적한다.

○ 공부하는 엄마는 자녀의 학습모델

2년 전 둘째아이가 본격적인 대입 준비에 들어가던 시기와 때를 맞추어 대학원에 진학한 유정숙(48·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씨는 두 딸의 지지와 도움 덕분에 수월하게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유 씨는 “시험기간이 자주 겹쳤던 작은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많은 격려를 주고받았고 큰아이도 엄마의 숙제나 원서 해석을 도와줘 큰 의지가 되었다”며 흐뭇해했다.

엄마의 공부는 아이들의 학습에도 큰 자극이 되고,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방송 모니터링을 공부하며 미디어교육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희선(43·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큰아이 학교의 미디어 교사를 자원하면서부터 아이와 많은 소재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사춘기로 소원해진 아이와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다”며 기뻐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엄마가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 모델은 없을 것”이라면서 “엄마 자신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공부하는데 따를 득실을 꼼꼼히 따져본 후에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소장은 또 “맞벌이건 공부하는 엄마건 간에 가사분담이 필요할 때는 막연하게 도와달라고만 하지 말고 가족들이 분담해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정해 놓고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지혜를 발휘하라”고 조언했다.

서울교육대 사회교육원 김혜정(영어교육) 교수는 “두 달 반 과정의 수강생 45명 중 상당수가 주부”라며 “주부들은 공부를 통해 자긍심을 갖게 되고 주부가 공부하는 모습은 가정 분위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고 소개했다.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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