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이웃의 마음을 얻으려면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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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 씨.

젊은 세대이면서 일본인의 정체성 문제를 날카롭게 다뤄 온 귀하를 ‘한일 작가회담’에서 만난 지도 6년이 흘렀군요. 잘 지내십니까.

최근 귀국 일본과 한국 관계가 편치 않습니다.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류 등으로 전에 없이 가까워진 듯했던 양국 국민 사이도 다시 냉랭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긴 세월을 이웃으로 살아가야 할 양국이 언제까지 이런 관계를 계속해야 할까요. 저는 이곳 독일 땅에서 한일 양국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습니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는 이웃 나라 폴란드인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민주화 직후인 1990년 폴란드인의 88%가 ‘위협을 주는 나라’로 독일을 꼽았습니다. 러시아를 ‘위협적’이라고 말한 폴란드인은 2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5년 뒤인 2005년에는 이 숫자가 뒤집혔습니다. 폴란드인의 67%가 러시아를 위협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독일이 위협적이라고 말한 폴란드인은 21%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설문에 응한 폴란드인 중 62%는 독일인을 사위 또는 며느리로 삼을 수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얼음같이 차가웠던 양국의 감정을 녹인 것은 무엇일까요.

1990년 10월 구동독 지역이 5개의 연방주로 탄생한 바로 그날, 독일은 폴란드와의 이른바 ‘오데르 강-나이세 강’ 국경을 재확인하는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역사적 발원지인 동프로이센 지역을 포함해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내놓았던 광대한 영토에 대해서 아무런 야심이 없음을 거듭 다짐한 것입니다.

폴란드인은 처음부터 독일인의 약속이 진정한 것이라고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이보다 20년 전인 1970년 12월, 폴란드인들은 놀라운 ‘정서적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모비를 방문하던 중 추모비 앞에 털썩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신문 1면에 실린 ‘무릎 꿇은 독일 총리’ 사진을 들여다보며 폴란드인은 이미 마음속으로 용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S 씨, 이런 독일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국인들은 일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일과 일본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도발자였습니다. 스스로의 죄 때문에 독일은 분단됐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저지른 행위의 대가로 엉뚱하게 한국이 국토 분단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대신 안고 통한의 세월을 보내게 됐습니다.

이런 이웃에 대해 일본이 오늘날 보이고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유럽의 옛 동맹국에 비할 때 일본은 자신의 죄과에 대해 제대로 값을 치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일본은 명백한 이웃의 영토까지 넘보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들이 독일처럼 진솔한 반성의 모습을 보인 기억도 없습니다. ‘통석의 염’ ‘유감’ 등 기기묘묘한 수사로 이어지는 사과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정부 핵심 요인들의 망언이 이어져오지 않았습니까.

S 씨.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원하는 것은 겉치레뿐인 사과가 아닙니다. 단 한번이라도 진솔한 반성과, 이에 값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한국인은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유윤종 독일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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