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일하]한국, 이제 국제사회에 빚 갚을 때

  • 입력 2006년 4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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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1년 후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외원조에 관계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망령된 생각도 해본다. “국민총소득(GNI)의 0.7%를 못사는 나라에 원조금으로 내놓으라”는 OECD의 권고를 따르지 않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것이라고….

우리는 1991년에 국제협력단(KOICA)을 조직해 대외무상원조를 체계화했다. 하지만 1996년 대외무상원조(ODA)액은 2억 달러에 그쳤다. GNI의 0.05%로 OECD가 우리나라에 권고한 0.7%(31억 달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 그때는 남북협력에 따른 대북지원 부담도 없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나라 살림을 맡기는 수모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여러 나라에 약속했던 원조금을 그나마 30%가량 줄여야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서방 각국에 군대 파병과 함께 원조를 요청했다. 이어 서남아시아에 지진해일(쓰나미)이 휩쓸었다. 이러한 ‘긴급한 지원’ 때문에 지난해 한국의 원조액은 늘어 GNI 대비 0.09%가 됐다. 근 10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으며 정부가 2009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0.1%에도 가까이 간 셈.

하지만 한국의 소득 대비 원조 비율은 지난해 OECD 30개 회원국 중 ODA 현황을 집계하는 23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1인당 15.2달러 수준. 이렇게 인색해서는 국제사회에서 행세하기 힘들다. 정부는 2015년까지는 0.2%로 높일 계획이다. 현재 OECD 평균이 0.25%이니까 그때쯤 체면 유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나라의 체면’ 문제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의 도리’라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우리는 고난의 시절 국제사회에 큰 빚을 진 민족이다. 가슴을 열고 큰 눈으로 세계를 보면서 빚을 갚아야 한다. 정부 못지않게 민간부문에서도 더 많은 국민이 후원자로 참여하여 선진국 시민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 15억 명이나 되는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1994년 8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내전으로 400여만 명의 전쟁 난민이 발생해 하루에 5000명씩 질병과 기근으로 죽어갔다. 당시 필자는 긴급구호팀을 이끌고 현장에 달려가 하루에 200여 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한 생명을 살리는 약값으로 5달러면 충분했다. 2년 동안 200만 달러를 모금해서 2만여 명을 먹이고 병을 고쳐 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격스럽다.

돈을 지원하는 것과 수십, 수백 명의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이 현지에서 재난을 당한 주민들과 울고 웃으며 구호사업을 벌이는 것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지에 갈 수 없다면 현금이나 물자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도 비행기 탑승자에게 1달러씩 거두어 아프리카를 돕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일은 정부가 주도해서 민간을 참여시키며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저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나라도 우리의 수출 대상이며 그들에게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여 주는 중요한 방법이 원조다. 일본은 유무상 원조를 통해 도로를 만들어 준 뒤 자동차를 팔며, 발전소를 지어준 뒤 가전제품을 판다.

이제 한국은 ‘장사를 잘하는 나라’로 어느 정도 알려졌다. 앞으로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힘이 되어 주는 ‘맘이 넓은 나라’가 된다면 더 좋겠다. 그런 시민정신이 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일하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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