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원암]이성태 한은 총재 내정자에 바란다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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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국은행 총재에 이성태 현 부총재가 내정됐다. 내정자는 40여 년간 한국은행에 봉직하면서 ‘물가 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을 강조한 소신파로 알려져 있다.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 안정이고,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므로 앞으로도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통화정책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방법은 크게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등 두 가지다. 이 중 재정정책은 수립과 집행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거나 지출을 늘리려고 할 때 예산을 짜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것. 반면 통화정책은 신속한 집행이 가능하다. 또 시장은 이에 즉시 반응하면서 일파만파로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통화정책의 위력이 이렇게 막강하므로 새 한은 총재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우선 새 총재는 경제의 세세한 면까지 조율하는 통화정책의 마에스트로가 되기를 바란다. 흔히 중앙은행 총재는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소신에 더하여 유연성과 기동성을 겸비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18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이끌다가 올 1월 퇴임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을 ‘통화정책의 마에스트로’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의 정책 수행 비결은 규칙보다는 재량, 최적화보다는 위험관리, 지적 구속보다는 유연성에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둘째, 금융시장이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을 읽고 반응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를 바란다. 시장이 경제에 대한 한은의 견해나 전망을 신뢰하지 않으면 선제적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 콜금리 인하와 인상 과정에서 통화정책이 선제적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를 추인한 경우가 있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인다고 해서 한은이 꼭 직설화법으로 얘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론과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책의 제반 효과를 두루두루 언급하면서 간접적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암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셋째, 통화정책 이외의 정책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긴밀히 협조하며 공명해야 한다. 그러나 한은 총재가 재정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하는데 이는 한은의 정치적 중립성 및 독립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증세나 감세의 재정정책은 통화정책과 달리 정치적 측면이 강하다. 한은 총재가 특정 조세정책을 지지하게 되면 당장 반대정책을 지지하는 정당의 지탄을 받게 된다. 이 정당은 한은 총재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인물로 치부하고 한은의 통화정책도 정치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통화정책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기 쉬운 것이다.

그린스펀 전 의장도 말년에는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을 지지했는데, 재정 적자가 확대되자 감세정책에 반대하는 민주당 등의 공격을 받았다. 새 한은 총재가 대통령과 고교 동문이라는 사실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으므로 중립성 및 독립성 강화에 더욱 유의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신임 총재는 누구보다도 한은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한은의 독립성 강화와 함께 내부 혁신에도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동안 우리 경제 사회의 투명성도 증대됐으므로 5만 원권 등 발행을 통해 10만 원권 수표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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