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원점 맴도는 양극화 대책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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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현 정권의 과제로 내건 양극화 해소에 관한 구체적인 대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훗날 언론 때문에 못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지만 실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 실행할 만한 의지나 능력을 갖추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과연 진정성이 있는 걸까. 선거용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동안의 논란 과정을 보면 그렇다.

이 정부 출범 초기부터 과제로 지적됐던 양극화 문제가 다시 등장한 것은 1월 18일 대통령 신년 연설에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운을 뗐다.

세금을 더 내라는 신호로 해석한 봉급생활자들이 반발하자 한발 뺐다. “저소득층에서 세금을 거둬 저소득층을 지원하자는 것”이라거나 ‘거꾸로 가는 양극화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1월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세금을 올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방향을 바꿨다.

그러더니 23일 ‘인터넷 대화’에서는 진전된 ‘세금계산서’를 내놨다. “혹시 세금을 올리더라도 근로소득세 상위 20%가 세금의 90%를 내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했다.

정부가 양극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면서 불과 두 달 동안 두 번이나 말을 바꾸는 것은 경솔하다.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면 무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세금 외에 다른 수단이 무엇인지 내놓은 적도 없다.

양극화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할 때부터 이미 “양극화 대책이 되레 서민을 울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연봉이 3000만 원대가 되면 ‘상위 20%’에 포함된다고 하니 결국 ‘유리지갑’을 가진 봉급생활자만 봉이라는 얘기가 또 나온다. 진정 세금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한다면 소득 통계, 특히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 등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행정능력부터 갖출 일이다.

연봉 3000만 원이라면 월급으로는 250만 원 선이다. 월 소득 250만 원인 가구의 생활이 어떤지 안다면 이들을 ‘상위 20%’로 몰아 세금을 더 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설득력이 없는 일을 자꾸 들먹이는 것은 ‘하위 80%가 상위 20%에 반감을 갖도록 만들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얼마나 더 거두어 어디에 쓸지도 먼저 밝혀야 한다. 보조금이나 지원금으로 쓰는 것인지, 아니면 이른바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려는 것인지 납세자들은 알아야 한다. 과연 몇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얼마 동안 지속할 것인지도 계획이 있어야 한다. 지출할 곳을 먼저 따져 세입을 결정하는 것이 나라살림을 운영하는 기본이 아닌가.

양극화 해소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없는지도 따져야 한다. 청년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구해 주는 일이 양극화 해소보다 더 급한 일이라고 본다. 일할 의욕이 없는 청년 무직자 니트족에서 부모에게 의지하는 캥거루족에 이르기까지 젊은 실업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런 청년들이 160만 명이나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몇 년 동안 경제위기는 안 오기 때문에 걱정 말고 쓰라”고 했지만 주위에서 노숙자와 무직 청년들을 목격하는 부모들에겐 한가한 소리다.

청년 실업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는 최근의 프랑스 사태를 보라. 최초고용계약에 대한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게 일시적인 취업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선거를 앞두고 1, 2년만 고용하는 일자리를 만들 요량이라면 아예 접어두는 게 낫다. 일할 의욕만 꺾어 놓기 쉽다. 당장 취업이 안 되더라도 차근차근 일자리를 늘려 주는 정책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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