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北어린이-여성 고통 외면하는 인권위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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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국경 없는 보편의 가치인데 여기에 왜 국경을 설정하느냐.”

지난해 12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제25차 전원위원회. 한 위원은 ‘북한 주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위원들의 공방으로 토론이 길어지자 이렇게 항의했다.

이에 대해 조영황(趙永晃) 인권위원장은 “‘왜 북한 인권에 대해 다루지 않느냐’는 국회와 일부 언론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일단 인권위가 북한에 대해 (인권 문제를) 언급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본보가 입수한 인권위 전원위 회의록에 따르면 11명의 위원은 지난해 9월 북한인권안이 처음 상정된 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법리 및 정치적인 논박을 벌이는 데 보냈다.

3단계 중 1단계 ‘북한과 북한 주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헌법, 6·15남북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의 조항은 물론 헌법, 대법원 판례까지 등장했다.

2단계 ‘의견 표명의 대상’에 대한 논의에서는 정치적 고려가 이어졌다. 아무런 의견을 표명하지 말자는 쪽은 “인권 문제 거론은 북한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에 의견을 표명하자는 쪽은 “인권위에 북한 인권 연구 예산을 배정해 준 입법부의 뜻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정작 회의 내내 북한의 인권 침해 실태와 심각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지난해 11월 인권위는 북한인권 국제세미나를 열어 생계유지를 위해 몸을 파는 북한 여성과 여성 인신매매의 증가, 아동들의 영양실조와 학대 등에 대한 실상을 전문가들과 논의했다. 인권위의 북한인권연구팀도 이 문제에 대해 2년 5개월 동안 자료 수집과 연구를 했다.

그런데도 인권위 최고의결기구에서 진행된 북한인권 논의에서는 북한 아동, 여성이라는 단어 대신 북한 정권, 정부, 국회 등의 단어만 들렸다.

다행히 논의가 진전되면서 일부 위원이 “인권이라는 관점에 비춰 북한인권을 우리의 눈으로 보는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탈북자’ ‘이산가족’ 등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인권위가 13일 비전선포식에서 발표한 비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북한만이 예외일 수는 없다.

동정민 사회부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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