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아오모리, 토론토, 서울

  • 입력 2006년 3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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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에, 치켜 올라간 심술궂은 눈매로 노려보는 꼬마. 일본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에 즐겨 나오는 악동 소녀의 캐릭터다. 마치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꼬마의 얼굴엔 고독함과 반항심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미국 뉴욕을 위시해 국제적으로 작가의 인기를 단번에 높여 준 것은 이 악동 소녀의 묘한 매력이었다.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도 전시회가 열려 8만5000명이 관람하는 대박을 터뜨릴 만큼 인기를 끈 작가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인 2명이 ‘나라 요시토모의 고향 아오모리 현-나라 요시토모의 세계 최대 규모 작품 소장’이란 문구가 인쇄된 팸플릿을 들고 신문사로 찾아왔다. 이들은 7월 개관 예정인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일본, 그것도 도쿄가 아닌 지방 미술관의 개관을 알리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술관을 구상하고 완공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세계적인 건축가 아오키 준이 설계를 맡았고 건축비만 110억 엔, 작품 구입과 주변 유적지 단장에 140억 엔이 들어갔다. 우리 현은 별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를 선택할 때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분야인 미술을 택한 것이다.”

인구 65만 명의 작은 현에서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든다는 계획을 구상하고 이를 해외에까지 홍보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작은 세계는 더욱 작아지고 게임의 무대는 더 커지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국가와 기업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도 세계무대에서 동등하게 경쟁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그런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문화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과 투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3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에서 세계 최초로 공식 오픈하는 뮤지컬 ‘반지의 제왕’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제작비 2300만 달러가 투입되는 이 작품은 뮤지컬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작품의 공연에 온타리오 주 정부도 1200만 지역 주민을 대신해 250만 달러를 직접 투자했다.

지역 정부가 공익적 목적이 아닌, 상업적인 공연에 돈을 투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연 개막 후 2007년 7월까지 북미에서는 토론토에서 독점 공연을 하는 조건이었다. 날로 빛이 바래 가는 도시에 새 기운을 불어넣고자 고심해 온 주 정부가 문화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이다. 뮤지컬을 보러 온 사람들이 다른 연극도 보고 미술관도 둘러보게 함으로써 토론토를 뉴욕의 뒤를 잇는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원대한 구상이다.

한국에는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에도 아직까지 ‘나갈까 말까’ 망설여서 화제의 초점이 되는 인물에서부터, ‘나요 나요’ 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까지 많은 후보가 몰려들고 있다. 과연 이들 중 ‘잠자는 동안에도 변한다’는 세상에 대응할 준비를 갖춘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앞서 가는 남들처럼 문화에 대한 비전까진 기대하지 않겠다. 다만, 크고 작은 지역의 대표로서 의미 있는 공적 구상엔 다가가지 못하는 인물들로 괜히 후보 리스트만 길어지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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