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교]시대착오적 언론 통제 포기하라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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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최근 언론 중재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언론피해구제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그동안 위헌 주장이 끊이지 않았고, 유력 신문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에서 법원 역시 위헌 제기 대열에 동참한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법원이 위헌제청한 주요 내용은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 위법성이 없어도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정정보도청구권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 구제의 한 유형으로 법원에서 발전시켜 온 제도이므로,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의 요건은 당연한 전제였다. 또한 법원은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라는 두 기본권 사이의 상충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보도대상을 공인(公人)과 사인(私人)으로 나누어 공인에 대하여는 언론의 자유를, 사인에 대하여는 인격권을 중시하여 조화를 모색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론피해구제법은 이러한 법원의 노력을 무위로 돌려 버렸다. 정정보도에 고의나 과실, 위법성을 요하지 않게 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인격권 침해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을 묻도록 함으로써 법원이 쌓아 온 판례를 폐기해 버리고 언론의 의혹보도를 곤란하게 만든 것이다.

언론피해구제법과 신문법은 참여정부가 설정한 4대 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밀어붙여 최초로 성사시킨 ‘개혁’ 입법이다. 그런데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는 사심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은 몇몇 신문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에 대하여 ‘정확한’ 사실보도와 ‘공정한’ 논평을 자주 요구했다. 사실관계가 조금만 잘못되었다 싶으면 즉시 정정보도를 청구하도록 관련 공무원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 언론중재위원회의 신청인 중 국가 및 공공기관의 비율이 2002년 이전에는 7.2%에 불과하였으나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과 2004년에는 30%대, 2005년에는 23%를 보이고 있다. 권력이 정정보도청구의 주요 당사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정정보도청구의 주요 당사자로서 정정보도를 더 쉽게 받아내기 위하여 법을 제정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잖은가. 그리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인격권을 내세운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고 보더라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신문의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것은 물론이지만, 권력이 이를 강조하는 것은 신문을 통제하겠다는 말이다. 현 정권이 늘 불만으로 삼고 있는 ‘신문의 횡포’는 권력의 통제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또 그렇게 해결되어서도 안 된다. 시장에서 신문의 자유경쟁을 통하여서만 억제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횡포를 부리는 신문은 독자에게서 외면받아 시장에서 퇴출당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언론에 대하여 정확한 사실만 보도하라고 요구하면, 이는 언론의 사명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고, 그 수단으로 의혹 제기는 필수적이다. 언론이 보도한 사실에 대하여 ‘진실로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고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설사 사실과 다르더라도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문법에도 근본적인 위헌 요소가 있다. 신문법은 권력이 신문을 지원 육성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밝히고 있는데,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권력의 지원을 받는 신문은 권력의 기관지가 될 뿐이다. 이런 신문이 언론의 사명을 다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현 정권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언론관계법을 합헌적이고 민주적인 내용으로 스스로 개정할 일이다.

이재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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