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근]방송委의 속보이는 ‘지상파 구하기’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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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출범한 방송위원회가 가장 많이 비판받아 온 것은 ‘지상파 방송사에 포획된 기구’라는 지적일 것이다.

이는 방송위원회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었는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규제 대상인 방송사들이 없으면 존재의 근거가 없어지는 취약한 기구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방송사들에 대해 나름대로 규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주제작 비율, 오락성 채널사업 진입규제와 같은 정책들이 지상파 방송사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용두사미 꼴이 되어 버리곤 했었다. 그나마 껍데기뿐인 규제들조차도 방송·통신 융합 논의가 진행되면서 거의 실종되어 버렸다. 부실한 규제 대상을 가진 규제기구는 힘을 쓸 수 없다는 저급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통신사업자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외형적 규모와 기술적으로 취약한 지상파 방송 위기론을 근거로 방송·통신 융합에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지상파 방송사들의 매출액과 시청 점유율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시청률이 30%는 쉽게 넘고 50%를 상회하는 프로그램이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20%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한 KBS가 작년에 큰 적자를 보았고, 올해 역시 방송 3사의 경영실적이 그렇게 좋을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

방송위원회가 이렇게 부실해진 지상파 방송사들 구하기에 나선 것은 ‘영역 지키기’를 위한 것인가. 최근에 방송위원회가 그동안 시청자들의 비판을 의식해 주저해 오던 지상파 방송사의 낮 시간 방송을 허용하고, ‘중간광고와 광고시간 총량제’ 등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지상파 방송사 위기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그 위기가 무엇 때문인가를 조금만 살펴보면 설득력은 크게 떨어진다. 인건비 지출이 전체 매출액의 30%를 상회하는 등의 방만한 경영이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상파 방송사들의 방만한 경영 이면에는 ‘상업방송이 할 수 없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른바 공영방송의 명분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본연의 목적은 실종되고, 어떠한 외부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조직의 논리만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방송위원회가 추진했던 KBS 감사 관련 방송법 개정안이나 최근 기획예산처의 정보공개 정책 등에 KBS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공영적 지상파 방송사들은 방만한 조직 운영으로 생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외주제작 비율 축소, 낮 시간 방송 허용, 중간광고 및 광고총량제 등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그렇지만 그동안 방송위원회는 시청자들의 눈치를 의식해 이를 주저해 왔다. 낮 시간 방송이나 중간광고와 같은 광고 방식 변경은 방송의 급격한 오락화, 상업화를 부추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논란의 여지가 많은 지상파 방송 위기론을 명분으로 이를 허용하려고 하는 것은 이 기구의 위기의식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영방송이라는 분명한 제도적 틀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의 상업화를 부추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그동안 방송의 공공성을 위해 재벌, 신문사, 외국자본, 통신사업자들의 진입을 반대해 왔던 논리와도 배치되는 일이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상업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영방송 시스템의 재구축, 공영적 방송사들의 구조조정, 사회적 감시 시스템의 정착과 같은 기반 조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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