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6년 화가 폴 세잔 사망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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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피카소(1881∼1973)가 없었다면 현대미술사에 관한 책들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폴 세잔(1839∼1906)이 없었다면 피카소도 없었을 것이라고 미술사가들은 말한다. 그만큼 세잔이 현대미술에 끼친 공이 크다.

1870년대 이후 30년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인상파 운동의 화가들은 자연을 색채 현상으로 파악해 순간순간 달라지는 색의 미묘한 변화를 묘사하려 했다. 해 뜨는 바다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해, 바다, 산 등 어느 하나의 대상도 선명하게 그리지 않은 모네의 ‘인상, 해돋이’ 같은 작품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이 순간적인 감각에만 몰두한 나머지 회화의 기본 요소인 형태와 구성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부족한 뭔가 새로운 것을 갈구하며 견고한 형태와 명료한 조형 공간을 탐구했다. 순간적 인상보다 실제로 지속하는 실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 결과 그는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뿔, 구, 원통 등 세 가지의 기하학적 틀로 환원시킬 수 있었다. 형태의 단순화라는 세잔의 이 같은 시도는 그 뒤 피카소, 브라크 등 20세기 입체파 화가들의 탄생을 불러 왔다.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세잔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고향의 빛나는 태양과 풍경을 그리는 데 매달렸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법대에 들어갔던 그는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미술 세계로 돌아왔다. 미술학교 시험에 실패해 실의에 빠지기도 했고, 평생 꿈꾸었던 살롱전에는 단 한 번도 입선하지 못했다.

1896년 인상파와 결별한 세잔은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와 작품에만 몰두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깊은 명상에 잠긴 덕분인지 그는 위대한 예술가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한 감정에 이르렀다. 그는 “풍경은 나의 마음속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고,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고 말했다. 1901년 엑상프로방스 교외에 아틀리에를 세우고 여기서 그림을 그리다가 뇌우(雷雨)로 졸도했으며 1주일 뒤 사망했다. 1906년 10월 22일의 일이다.

세잔은 생전 후배들에게 “예술가의 목표는 대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작업할 수 있게 굳센 정신을 지니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신은 오늘날에도 빛나는 것이어서 그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1996년 파리, 런던, 필라델피아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순회 전시됐으며 매회 입장권 매진 사례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지금도 그의 작품이 세계 경매시장에 나오면 수백 억 원에 거래된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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