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주장을 요즘 가장 솔직하게 표출하는 한 교수는 며칠 전 1946년의 미 군정청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공산·사회주의 지지 세력이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겨우 14%였다. 당시 조선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응당 그 체제를 택했어야 했다”고 발언했다. 미국이 없었으면 남한 사회도 자연스럽게 공산화가 됐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됐어야 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그 당시의 여론조사는 78%라는 높은 문맹률 상태에서 임의적으로 행해졌고 과학적 표본추출 기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기에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 설혹 그 여론조사를 인정한다 해도 그 교수의 발언은 ‘어떤 정부 형태를 선호하느냐’라는 질문에 ‘대의 민주주의’라고 응답한 사람이 85%인 데 반해 공산주의 체제를 뜻하는 ‘계급지배’ 지지는 5%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또 문제가 된 대목인 ‘어떤 경제체제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사회주의 70%,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라는 대답이 나왔으므로 공산체제를 선호하는 국민은 극소수라는 것이 한눈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당시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는 광복 직후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대안이 불분명한 가운데 ‘평등주의’에 대한 막연한 선호가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형태로 봐야 한다. 사회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이 아니라 합법적 선거를 통해 무산자계급의 정권 창출을 바라는 정치사상임을 감안할 때 당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압도적 지지와도 모순되지 않는 결과이다.
“6·25전쟁은 민족통일전쟁이었고 미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빨리 끝났을 것이다”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 ‘6·25전쟁은 자연발생적 전쟁이었다’는 수정주의이론이 유행했지만 구소련의 해체로 비밀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이 학설은 이미 폐기 처분됐다. 그것은 소련의 승인과 중국의 묵인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다. 또 미국과 유엔의 개입으로 전쟁은 발발 후 4, 5개월 만에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이 2년여를 더 끌어 무수한 사상자가 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6·25전쟁은 이후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전쟁의 참상도 참상이지만 전후 남북 양쪽에 극단적인 적대감이 고착되면서 온건파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완전히 제거됐고 중립화 통일의 여지가 없어지는 등 파괴적인 감정 대립의 씨앗이 배태됐다. 요는 6·25전쟁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전쟁이었으며, 누가 개입해서 길게 끈 것이 본질이 아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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