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崔 주사’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06분


코멘트
신임 대법원장이 향우회에 참석했다. 고향이 배출한 큰 인물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알아두면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눈치를 살피던 지역의 한 원로가 대법원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자신과 관련된 재판을 잘 봐 달라는 민원이었다. 1999년 9월 취임 직후 최종영 대법원장이 겪은 이야기다. 그 후 그는 동문회 같은 사적 모임에 아예 발을 끊은 것은 물론 점심도 대부분 집무실에서 혼자 해결했다.

▷법관이 치러야 하는 가장 큰 희생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퇴임한 한 대법관은 “법관은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고독은 달갑지 않은 어둠 같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면 평소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은밀한 사물의 존재까지 알아보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3일 6년 임기를 마친 최 전 대법원장이 법절차와 사법적 판단에 불복하는 분위기에 일침(一鍼)을 놓았다. 그는 퇴임사에서 “최근 여론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고 폄훼하는 행동이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1965년 판사로 임용된 뒤 40년간 ‘은둔자의 원칙’을 지켰고, 일처리가 꼼꼼해 ‘최 주사(主事)’란 별명을 얻은 그가 대놓고 법치주의의 위기를 지적한 것이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사법부 권위에 대한 정치권의 도전은 끝이 없었다.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선거법 위반사건 판결이 잇따르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사법부의 편파적 자의적 법해석으로 우리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당 지도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낯 뜨거운 일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일부 시민단체와 몇몇 여당 의원은 헌법재판소 폐지를 들먹이기도 했다. 수도이전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한 반격이었다. 사법부의 노력만으로 법치가 확립되지는 않는다. 새겨들어야 할 ‘최 주사’의 마지막 당부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