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영태]저출산 위기를 복지확대 기회로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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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합계출산율)가 지난해 1.16명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 됐다. 인구학자들은 한 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3명보다 낮은 수준에서 3년 이상 지속될 때, 그 나라가 단순한 저출산이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정치 국방 등 많은 분야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인구 구조의 왜곡을 초래하는 ‘초(超)저출산’ 현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여긴다. 지난 3년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7→1.19→1.16명이었다. 초혼 및 출산 연령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연령별 출산율도 계속 줄어든 사실을 볼 때, 한국도 이제 ‘초저출산’ 국가에 진입했다. 저출산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출산율이 1.17명으로 떨어진 2002년 이후 한국 정부는 저출산을 고령화 사회를 초래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발 빠르게 대처해 왔다. 중앙정부를 비롯하여 많은 지방 단체도 여러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았고, 다음 달에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다.

하지만 정부가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에 비해 일반 국민이 초저출산 현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느슨해 보인다. 워낙 정부와 언론이 저출산을 위기라고 규정해 온 탓에 이를 막연하게 사회적 위기라고 인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합계출산율 1.16’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현재와 미래에 본인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데 다가올 미래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 하나 낳아 키우는 데 평생을 걸쳐 쏟아야만 할 경제적 시간적 비용이 분명한데 백화점식으로 나오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들이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한마디로 경제 정치 교육 등 사회의 온갖 분야에서 위기라는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위기의 홍수’ 속에서 초저출산 위기는 일반 국민에게 그저 또 하나 늘어난 위기에 불과하다.

정부는 왜 국민 사이에서 저출산과 관련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출산 장려를 위해 수십 가지 개별 정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국민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저출산을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온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비록 초저출산 현상이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생겨난 일이지만, 그 해결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해결책은 단순히 결혼 및 출산과 관련한 인구학적 접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저출산 현상을 정치적 업적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부동산, 조세, 교육, 문화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연계하여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저출산 현상은 위기가 아닌 새로운 사회, 더욱 성숙해진 시민사회를 달성할 수 있는 도전이며 기회라는 측면도 있다. 초저출산으로 인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생산 활동을 비롯한 사회 참여의 기회가 확대되고, 출산과 보육 그리고 노인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인식이 확산되며, 전반적인 사회복지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의 위기를 우리 사회가 진일보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정부만이 아닌 학계, 경제계, 시민사회의 합의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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