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범진]YS와 DJ가 만나면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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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두 지도자이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 손잡고 함께 투쟁해 온 경쟁과 협력의 상대였다. 그런 두 지도자가 19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헤어지면서 적대관계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모두 대통령을 지냈지만 그들의 분열은 한국 정치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영호남 지역갈등’의 골을 깊게 한 것이다.

DJ는 지역갈등 문제만 나오면 박 전 대통령의 ‘지역차별 정책’에 책임을 돌려 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박 전 대통령과 DJ가 대결했던 1971년 대선 때만 해도 지역대립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 당시 DJ가 부산에서 42.7% 득표했고 박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32.7% 표를 얻었다. 1980년대 들어 한 선거구에서 2명씩 뽑던 11,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호남지역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여야 후보가 동반 당선됐다.

본격적인 지역갈등 정치구도는 YS와 DJ의 관계가 악화된 1987년 대선 때 형성됐다. 대선을 앞두고 50 대 50의 지분으로 통일민주당을 공동 창당했으나 당내 후보경선을 거부하고 DJ가 당을 깨고 나가 평화민주당 후보로 독자 출마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1987년 대선에 이어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김수환 추기경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YS와 DJ의 분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개탄했다.

만약 그때 민주화 세력이 분열되지 않았다면 노태우 정권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두 사람이 나중에 각각 쿠데타 세력과 손잡고 집권의 길을 택해 민주화 세력의 순결성을 훼손하는 부끄러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민주화를 위한 정치지도자이면서도 영호남 지역대립의 상징적 인물이 되다시피 한 YS와 DJ의 화해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15일 평양에서 열린 ‘통일대축전’ 행사에 가리는 바람에 비록 언론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으나 같은 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민주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회장 정의화)이 ‘YS 정권과 DJ 정권의 재평가’를 주제로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연구모임’은 9월과 12월 광주와 부산에서 토론회를 연 뒤 YS와 DJ가 만나는 자리도 주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쉬운 것은 그러한 노력이 너무 때가 늦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 중 어느 하나라도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을 때 화해가 이루어졌다면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거치면서 오히려 정치적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 국민에게 별 영향을 주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노력이 두 사람의 화해를 이뤄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두 지도자의 분열 이후 상호 불신과 감정의 골이 워낙 깊기 때문이다. 원래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이 화해를 하려면 잘못한 쪽이 먼저 사과하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거나 한쪽이 상대방의 잘못을 먼저 용서하고 다른 쪽이 뒤에 사과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아니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화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도로 악화된 두 지도자의 관계로 보아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아 보인다.

YS와 DJ의 화해를 모색하는 ‘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이른바 DJ 비자금을 폭로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YS가 검찰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하자 이들은 YS마저 당에서 쫓아냈다.

이 일련의 사건은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난관에 봉착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이 검찰의 손을 빌려 DJ를 제압하려 하면서 일어났다. 당시 사건을 주도하거나 돕던 사람이 YS와 DJ의 화해를 주선하겠다고 나선다면 국민과 세상을 속이는 몰염치한 짓이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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