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상상과 체험 사이

  • 입력 2005년 6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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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반공포로 석방 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다. 현동화는 이명준의 실존 인물이다. 그는 당시 제3국을 택한 88명의 반공포로 중 한 사람으로 1954년 2월 인천항을 떠나 인도에 정착했다.

현 씨는 2년 전 회고록을 통해 소설 ‘광장’의 일부 내용이 사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지적했다. 이명준은 남과 북 모두에 실망해 제3국을 선택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현실에선 저마다 사정이 달랐다고 증언했다. 넓은 땅에 가서 사업을 하고 싶었던 사람, 공부를 하고 싶었던 사람 등 제각각이었다는 것이다.

소설 속의 이명준은 남한에서 살다가 월북해 북한의 노동신문기자로 근무한다. 현 씨는 “북한 실정에선 현실성이 희박한 얘기”라면서 “노동신문은 북한 정치권력의 핵심 기구로 월북한 젊은이가 곧바로 채용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6·25전쟁은 국민 대부분에게 상상의 세계로 존재한다. 6·25를 ‘기억할 만큼’ 체험한 사람들의 나이는 60세를 훌쩍 넘었다. 나머지는 간접적으로 전해 듣거나 책과 예술작품을 통해 6·25를 이해한다. 상상과 체험은 ‘이명준’과 ‘현동화’의 차이처럼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역사가와 학자의 몫이지만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6·25에 대한 연구는 국제정치와 전쟁사 쪽에 집중되어 왔다. 전쟁이 어떤 세력에 의해 도발됐는지, 어느 나라가 이득을 챙겼는지, 어느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의 문제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리 절실하지 않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그들에게는 전쟁이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쟁의 고통 속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가 더 가까운 문제가 될 것이다.

학계에서 6·25전쟁의 사회사(史)적 측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전쟁의 와중에 일반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규명하는 작업이다. 그 연구 대상의 하나는 북한군이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시민들이 겪었던 ‘3개월간의 인민공화국 치하(治下)’이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남쪽으로 피신한 뒤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 서울 인구 144만 명 가운데 100만 명이 서울에 버려졌다. 북한의 서울 통치는 3개월 뒤인 9월 28일 서울 수복이 이뤄질 때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가 중요한 것은 서울이라는 큰 집단이 북한의 사회주의를 직접 체험해 봤다는 데 있다. 이처럼 대도시의 구성원 전체가 북한 통치를 겪었던 것은 6·25전쟁 과정에서 유일하다.

서울 시민들은 북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진 않았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점령이 계속되면서 서울시민들은 생활고와 사상 개조, 인민재판 등으로 이어지는 북한 통치에 실망해 남한 지지로 돌아서게 됐다. 어느 체제가 우월한지 당시에 이미 판가름 났던 것이다.

6·25전쟁의 사회사 연구는 초기 단계다. 더 늦기 전에 전쟁을 체험한 사람의 기록이 최대한 확보되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이 뭔지 모른다’는 푸념보다는 실질적인 기록 하나가 소중하다. 서울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국적으로 다른 위치에서 6·25전쟁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북한 체제를 겪어 본 서울 시민들이 사회주의에 등을 돌렸듯이 보통 사람들의 눈은 무섭고 정확하다. 권력자가 역사를 의식한다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서민의 삶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눈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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