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거성]‘협약’만으론 투명사회 못 만든다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16분


코멘트
9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은 필자로서는 누구보다 감격적인 자리였다. 경제단체장들과 4대 대기업 그룹 회장들이 참석하여 투명사회협약에 서명하고 기업들의 윤리경영 실천과 투명성 증진,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의 실현 등을 약속했다. 또 여야 대표를 비롯한 정계 인사들이 불법정치자금의 국고환수와 불체포특권 남용 방지장치 마련, 이해충돌의 방지수단 마련 등의 연내 이행을 약속한 것은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피터 아이겐 회장의 평가처럼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과연 그 많은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하는 회의적인 전망이나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는 등의 비아냥거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이런 형태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자는 제안과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반부패국민연대 창립 초인 1999년부터 계속되어 왔다. 특히 2000년 1월 5일에는 시민사회와 정부, 기업 등이 한자리에 모여 새천년의 첫해를 ‘맑은 사회 만들기 원년’으로 삼자는 선포식을 가진 바 있다.

▼5년전 실패 교훈삼아야▼

그러나 그때는 그야말로 공약에 그치고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 쓰라린 경험을 해 본 필자에게 이번 투명사회협약에 대한 의심과 비관은 정말 가슴에 못을 박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때 왜 실패했던가. 무엇보다 그때는 사회 각계의 합의가 충분하지 못했다. 또 선언의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구두선에 머물렀다. 더욱이 당시 선포식이라는 ‘이벤트’는 있었지만 맑은 사회 만들기 ‘운동’에 대한 각계의 참여와 실천이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마치 만병통치약으로 생각됐던 선언은 ‘하루 이벤트’로 전락해 버렸고, 들떴던 마음은 참담함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번의 투명사회협약에 대해서도 실효를 거둘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큰소리로 “그렇다”고 답할 자신은 여전히 없다. 2000년의 실패를 교훈 삼아 보다 넓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노동 법조 교육 종교 언론 등 우리 사회 주요 분야의 충분한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또 투명사회협약에 보다 구체적인 과제들을 제시하자는 견해가 어느 정도 관철되었음에도 과거 시민사회 등에서 제기된 과제들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유효하다. 마찬가지로 국민적 참여는 이제 그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일 뿐이고 확보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이번 투명사회협약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인가. 문제 상황을 예견하고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여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한 실패할 가능성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를 구성해 협약의 이행에 대한 점검과 평가, 갱신 등을 실행하도록 한 것이나, 투명사회 실현을 위한 시민참여 헌장을 마련하여 1000만 명 이상의 온라인 서명을 받고 이들의 실천과 참여, 감시와 압력을 조직화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런 실패를 막기 위한 노력이다.

▼협약 실천여부 감시 압력▼

여기에 투명사회협약의 성공적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이 또 하나 있다. 투명사회협약의 성공을 위한 노력은 이번 협약 체결식을 이끌어낸 주체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협약이 실효를 거두도록 하기 위한 각계의 참여와 지지, 실천만이 협약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전망을 어긋나게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김거성 반부패국민연대 사무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