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유홍림]사회통합 능력을 발휘하자

  • 입력 2005년 2월 2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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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참여정부 2년을 평가하기 위한 각종 조사 분석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분야별 평가의 구체적 내용은 많지만 그 대강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요약된다. 권위주의와 부패의 구습을 청산하고 지방분권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반면, 경기침체와 민생고, 조급한 개혁정책, 인사관리 및 안보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사회통합의 실패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우려를 더한다.

지난 2년 동안 이념과 세대, 계층과 지역의 차이는 적나라한 갈등으로 표출됐다. 탄핵과 총선 정국, 개혁입법안 추진의 와중에서 서로 간의 불신은 심화됐고, 격렬한 비난과 폄훼 속에 상처는 깊어갔다. 물론 이러한 갈등의 근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한 세기의 역사과정을 되돌아 보면 갈등의 뿌리는 깊고 그 구조는 복잡하다.

▼분열과 同化의 논리▼

사회분열에 대한 우려만큼 통합의 절실함도 크다. 통합능력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 중요하다. 개인 차원에서 통합은 온전한 자기 정체(正體)의 수립을 의미한다. 한 개인은 삶의 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즉, 인간관계를 넓혀가면서 그에 상응한 정체성의 다원화를 경험한다. 성숙한 개인은 이렇게 다원화된 자기 모습들을 하나의 틀 속에서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능력을 발휘해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통합능력이 부족하면 자기분열 증세에 시달리거나 자신 속의 하나의 모습에 동화돼 외골수 인생을 살게 된다.

물론 사회 차원의 통합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우선 통합능력이 결여된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자. 분열된 사회에서는 평등과 정의와 같은 기본적 가치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집단의 정의 관념과 다른 집단의 정의 관념이 너무 달라 사실상 정의 관념이 없다고 보아도 좋을 지경이다. 아울러 신뢰와 존중은 상실돼 사람들을 묶는 끈은 알량한 이해타산일 뿐이다.

분열의 심화는 다른 극단인 동화(同化)의 논리를 낳는다. 같은 생각과 연고의 사람들이 뭉쳐 동지애를 확인하고 그들의 이상을 전체 사회로 확대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다른 집단의 저항에 부딪히고 결국 분열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간다. 편 가르기와 반목질시, 원한의 감정은 이질성을 용납 못하는 동화의 논리에서 비롯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통합에 실패한 사회는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린다. 통합능력은 개인이나 사회 모두의 건강을 보장하는 기초역량이다.

▼사회통합은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분열과 동화의 논리에 지배돼 왔다. 겉으로는 여러 형태의 통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서열화를 통한 수직적 통합, 즉 사이비 통합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수평적 통합이다. 모든 개인과 집단은 서로의 존재 의미를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원한의 감정을 떨쳐버려야 한다.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들은 설득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중재될 수 있다는 믿음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양자택일보다는 상호보완의 논리로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명쾌한 이분법이 아닌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통해 중간지대의 존재를 인정할 때 사회통합은 가능하다. 사실상 통합은 분열과 동화의 중간상태다. 통합은 내적 다양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분열상태와 그리 멀지 않다. 분열과 통합, 그리고 동화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통합능력은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길러진다. 길게 보면 지난 2년 동안 경험한 갈등의 표출은 사회통합의 한 과정이었다. 한국사회의 이질적 구성과 다양한 갈등의 차원을 고통스럽지만 모두가 확인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분열과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분열과 갈등을 진정한 통합의 발판으로 승화시키지는 못한다. 그럴듯한 가면 뒤의 진솔한 자기 모습을 확인하고, 지금까지 낯설었던 능력을 발휘해야만 통합이 가능하다.

유홍림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hongl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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