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흥식]노숙자인들 혹한에 떨고 싶으랴

  • 입력 2005년 1월 3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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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의 집단 소동 사태가 빚어지면서 노숙인 문제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해졌다.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며 그 원인이 사회구조적인 데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도덕성이나 윤리적 차원을 넘어 공공정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데에 그 특성이 있다.

근대 국가 이전엔 노숙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아 사회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이 경우 노숙인 정책의 핵심은 노숙인을 강제 수용해 일반인과 격리함으로써 대다수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사회에선 자유와 인권 의식의 신장에 따라 노숙인도 동등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해 통제나 격리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약자의 하나로 보게 됐다. 이 경우 노숙인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회정책의 한 대상으로서 그들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된다.

▼통제아닌 보호차원 접근을▼

서울역에서 발생한 노숙인 문제는 바로 노숙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아 사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로 보는 시각이 아직 우리 사회에 혼재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동시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노숙자 차림’, ‘비슷한 인상착의의 노숙자’ 등의 표현을 남발하는 경찰 발표나 언론 보도는 노숙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위기 계층을 마치 범죄자 집단인 양 낙인찍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물론 사회질서 유지 차원에서 이들의 비행과 범죄에는 강력 대처한다. 그러나 노숙인 문제를 개인의 나태나 윤리적 파탄의 문제가 아닌, 경제 위기나 대량 실업에 의한 사회구조적인 빈곤 또는 불평등에 의한 사회적 배제 문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노숙인 문제를 우선 주거의 문제로 간주해 주택정책 차원에서 다룬다. 거리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주거 문제를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누가 한겨울에 따뜻한 집이 있는데 서울역에서 쪼그리고 자겠는가. 공공역사에서의 생활을 탈피할 수 있도록 이들 위기생활자를 위한 주거, 급식 환경 등 현장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산이 없거나 소득 구조가 불안정한 저소득 빈곤계층이 자신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공익형 염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현재의 매입 임대주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노숙인 쉼터 역시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현재 쉼터의 정원 기준은 1인당 거주 면적에 대한 고려 없이 마련돼 1개 침실을 평균 5, 6명이 사용하는 실정이다. 아울러 여성, 가족, 노인, 청소년 등 인구학적 요소도 고려하여 쉼터의 규모를 다양화해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유럽연합(EU)에서 2000년 제시한 ‘노숙인 정책에 대한 국가 실천 계획’을 우리도 마련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주거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 고용, 사회복지 서비스 등 포괄적 차원에서 노숙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예방’에서 ‘긴급 원조’를 거쳐 ‘사회 재통합’에 이르는 제반 전략을 주택과 복지 담당 부처, 나아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원활한 연계를 통해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적차원 구제책 있어야▼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노숙인 문제는 특히 ‘실천’이 중요하다. 정부로서는 그리 생색낼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구체적인 정책의 마련과 실천 속에 노숙인 문제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이다.

조흥식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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