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우 기자칼럼]'취업장사' 기아, 株價가 뛰는 이유는…

  • 입력 2005년 1월 25일 1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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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이 터진 이후 기아자동차 주가의 동향이 흥미롭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1월 19일 1만1400원이던 주가가 20일 1만1900원 21일은 1만2000원, 그리고 이번주 첫날인 24일은 1만2250원에 마감했다.

회사와 노조가 야합하여 조직적인 채용장사를 해온 것이 드러나 회사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는데도 주가는 오히려 오르다니.

그러나 이 기막힌 역설에는 이 회사 노조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관련 뉴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비합리적으로 회사 경영을 압박해온 노조의 전횡이 일시에 부각됨으로써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의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주가가 힘을 받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시장은 이 회사의 경우 노조가 회사의 역동성과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노조는 이미 기업경영의 파트너가 아니라 기업의 숨통을 죄고 있는 이무기 쯤 되는 셈이다.

어쩌다가 노조의 이미지가 이처럼 추락하게 되었을까.

애당초 노동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은 임금과 노동착취를 일삼는 기업가들의 탐욕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단결해 스스로의 권익을 옹호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역으로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로 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장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조합원의 권익옹호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집단화하고 세력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부분의 노조가 단위 노조 활동에서 벗어나 산업별 노조라는 상급 노조를 두고 있으며 그 위에 전국 규모의 노동단체가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노동단체는 이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자 하나의 정치집단이 되었다.

노조의 힘이 강해지다 보니 해마다 노동생산성을 앞지르는 임금인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 경쟁률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1997년 이후의 한일간 명목임금 상승률 및 생산성 향상 추이를 비교해보면 1997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03년의 임금이 일본은 96.8로 오히려 줄어든 반면 한국은 152.2로 대폭 상승했다.

그 기간중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은 매년 임금 증감율과 비슷하거나 다소 앞선 반면 한국은 임금 인상율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1.5내지 2배 수준으로 높았던 해가 많았다. 한국은 1987년에서 1995년까지 9년간의 통계에서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16.1%나 된 반면 같은 기간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1.1%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활동은 대기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이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03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율은 11%에 불과하다. 노조 조직율은 조합에 소속된 근로자 수를 전체 임금근로자수(공무원 제외)로 나눈 수치. 특히 조합원 수 5000명 이상인 대기업 노조원은 전체 노조원의 43.9%에 달한다.

그러니까 불과 11%의 노동자들이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임금인상을 주도하고 노동시장을 경직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착취와 청년들의 신규 노동시장 진입 곤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활동은 필요할 것이다. 노조는 개개인으로서는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조가 힘이 강해지면서 자제력을 잃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는 점이다.

자제와 자율로부터의 일탈은 타락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락과 부패는 늘 대가가 주어지는 법이다. 노조가 지금과 같이 조직이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기업활동 위축과 생산공장의 해외이전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일자리의 감소를 의미하고 현재의 노조가 자식세대의 일자리마저 빼앗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현 노조의 탐욕의 대가를 자식세대가 비싸게 지불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번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은 우리기업 노조 문화의 썩은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사건은 이쯤해서 노조 활동의 문화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라는 운명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정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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