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현실 외면한 현금영수증制

  • 입력 2004년 12월 2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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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벌어들인 만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금 제대로 다 내고 돈 버는 음식점이 한국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11월 초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생존권 사수를 위한 전국 음식점주 궐기대회’에서 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밥솥’을 집어 던졌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음식점 주인 A 씨. 그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현금영수증제도를 앞두고 요즘 심한 걱정에 빠져 있다.

자영업자들의 세원(稅源) 확대라는 취지로 시행되는 현금영수증제도를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평등의 원칙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정책에는 ‘때’가 있다. 또 부작용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

현금영수증제도가 숨은 소득을 찾아내 과세한다는 ‘좋은 뜻’에서 도입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소 자영업자들이 한계상황에서 허덕이는 지금 시행된다면 이들의 생존을 위협해 침체된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올해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이나 접대비실명제를 돌이켜보자. 나름대로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를 더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조세 전문가들은 부가가치세 사업소득세 등 현재 자영업자에 대한 세율이 ‘탈세(脫稅)’를 고려해 너무 높게 정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오죽하면 1997년 서울 강남에서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고기집을 공동으로 운영해본 정치인들이 “이중장부없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 입을 모았을까.

게다가 정부는 1999년 이후 신용카드 사용이 크게 늘었는데도 이로 인해 세금이 얼마나 더 걷혔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금영수증제도도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면 자영업자들은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내더라도 세율이 낮아지기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현금영수증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현금영수증제도가 박용성(朴容晟)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비판했던 “현실과 괴리된 ‘투명성 증후군’ 정책”의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되지 않도록 세율 인하 등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중현 경제부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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