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8시 31분


코멘트
올해 세계경제는 좋았다. 특히 아시아가 그랬다. LG경제연구원은 일본을 뺀 아시아의 평균성장률을 7.7%로 추정했다. 중국이 9.3%로 선두였고 인도와 말레이시아는 7% 안팎이었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렸던 싱가포르 홍콩 대만도 6∼8%대 성장을 했다.

한국도 외부 호재를 활용해 경제를 키우기에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세밑을 코앞에 둔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나 홀로 불황’이다. 지난해 3.1%로 추락한 성장률은 정부의 5∼6%대 공언(公言)이 무색하게 올해 4.7%를 넘지 못할 전망이다. 수출을 제외한 체감 내수경기는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삶의 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경제가 위기냐 아니냐는 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위축이다. 기업인과 소비자 조사에서 나타나는 내년 전망은 한결같이 잿빛이다. 무력감과 불안에 짓눌리는 경제는 약이 없다. 금리를 내리고 적자국채를 찍어내는 통화 및 재정정책에 의존하는 경기부양의 약발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도 경험했다. 무모할 정도로 미래를 낙관하던 한국인, 해외 석학들조차 인정한 ‘기적의 나라’ 한국은 어디에 갔을까.

세상의 섭리를 주재하는 신은 냉정하다. 개인이든 국가든 무한정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밥상을 차려주었을 때 먹지 못하면 밥상을 치워버린다. 최근의 달러화 약세-원화 강세, 원자재가격 상승, 세계경제 둔화는 외부 환경도 나빠질 것임을 예고한다.

공부를 5등 하는 학생이 이를 악물면 3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잠시 한눈팔다 20등이나 30등 아래로 떨어진 다음에 상위권으로 재도약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권투선수도 잔매를 많이 맞으면 일어나지 못한다. 국민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무너뜨리기는 쉽지만 한번 쓰러진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는 훨씬 힘들다.

남의 나라라면 “그렇게 망해 봐라”며 여유 있게 ‘실패의 연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다.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다행히 정부도 경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경제이며 내년에 경제회생에 주력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올바른 현실진단이다. 청와대에 경제정책수석비서관제를 부활한 것도 긍정적 신호로 보고 싶다.

새해 경제를 살리기 위한 화두(話頭)는 자유주의적 개혁이다. 재산권 불안심리 해소와 기업규제 혁파, 노동 및 교육운동 변화가 절실하다. 사회주의나 민중주의적 구호에 기운 하향 평등주의적 국가개입 확대가 자멸행위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어느 시각의 ‘세상 읽기’가 현실적합성을 가졌던가. 경제는 결과로 말한다.

복거일 씨는 저서 ‘진화적 풍경’에서 ‘호의적 외면(benign neglect)’을 강조한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일부 한계를 알면서도 애정을 갖고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이 문제를 풀어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사의 흐름은 효율성은 물론 도덕성에서도 이보다 앞선 대안이 없음을 일깨워준다.

우리 경제는 분명히 어렵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원숭이띠 해를 보내고 닭띠 해를 눈앞에 둔 지금 모두 다짐하자.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