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9년 레너드-두란 3차전

  • 입력 2004년 12월 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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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지호텔.

미국의 ‘천재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1956∼ )와 파나마 출신의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1951∼ )이 링에 올랐다. 대전료만 두 사람 합쳐 2000만 달러가 넘는 빅 매치.

링 위에서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1980년 6월 20일 첫 대결에선 WBC 웰터급 챔피언이던 레너드가 두란에게 판정패. 레너드로선 생애 첫 패배의 수모를 당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두 번째로 붙었을 땐 절치부심한 레너드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8회 기권승을 얻어냈다.

9년 만에 벌어진 3차전. 경기 전부터 신경전이 치열했다.

“두란은 이제 역사속의 인물이 될 일만 남았다.”(레너드)

“이제야 진정한 최강이 누군지 가릴 수 있게 돼 기쁘다.”(두란)

경기는 기대와 달리 화끈하지 못했다. 레너드는 계속 두란을 피해 다녔고 두란은 그런 레너드를 잡지 못했다. 레너드의 12회 판정승. 서른을 훌쩍 넘긴 두 노장 복서에게 전성기의 모습을 기대한 건 무리였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10명의 복서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두 사람. 한 체급에서 챔피언이 되기도 어려운데 레너드는 다섯 체급, 두란은 네 체급에서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복싱 스타일이나 이력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레너드는 스피드를 앞세운 아웃복서 스타일. 여기에 현란한 입담과 쇼맨십으로 1980년대 미국 프로 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세계대회와 올림픽을 휩쓸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통 코스를 밟았던 레너드와 달리 두란은 파나마의 뒷골목 출신으로 ‘돌주먹’이라는 별명처럼 강펀치를 자랑했다. 강인한 마스크와 야성미, 저돌적인 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였다. 아마추어 전적은 별 게 없었지만 거리에서 배운 싸움 실력으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1960, 70년대에 걸쳐 복싱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면 1980년대는 그 불이 활활 타오른 시기였다. 흥행 면에서도 최고의 전성기였다.

레너드, 두란, 마빈 헤글러, 토머스 헌즈 등 4명의 스타 복서가 번갈아 맞붙은 세기의 대결은 그 백미였다. 레너드-두란의 3차전을 끝으로 80년대는 저물었고 이에 견줄 만한 라이벌전은 더 이상 없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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