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타이거 우즈의 ‘정치 레슨’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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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제주를 방문했을 때다. 그의 골프에 대한 정성과 매너를 두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는 골프를 하며 1야드 단위로 거리를 측정하는 등 매우 정교(精巧)한 경기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경기를 했을 땐 그린의 경사나 잔디 상태를 다시 살펴보며 실패 원인을 찾아내 다음 게임에 대비했다. 동반자가 좋은 샷을 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등 상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함께 경기를 했던 한 기업 회장은 우즈의 그런 세 가지 자세야말로 기업인이 꼭 갖추어야 할 덕목(德目)이라며 그를 통해 경영을 다시 배웠다고 했다. 너무 치켜세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이는 경영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답답한 대치정국을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우리 정치에 그 세 가지 덕목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첫째, 한국의 정치에는 정교함이 없다. 정책 하나라도 그것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부작용은 없는지,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연구 검토해서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치밀함은 없이 덥석 내놓고 뒤에 여러 문제가 발생해 혼란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슈가 제기됐을 때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사안을 정리해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정파적, 지역적, 이념적 입장에서 찬반(贊反)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잦다. 정책보다 정쟁(政爭), 실천보다 웅변, 이성보다 감정이 지배하는 정치풍토에 정교함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것이다.

둘째, 정치인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는 데 인색하다. ‘실패 연구’가 없는 것이다. 특히 집권세력이 그렇다. 어떤 일을 추진하다가도 문제가 발견되면 한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던 일을 그만두면 정치적으로 밀린다는 생각부터 한다. 잘못된 일을 시작했다며 책임 추궁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밀어붙이기 정치가 힘을 받는 이유다.

셋째, 우리 정치에는 배려가 없다. 상대 정당이나 정치인을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정치적 파트너로 보는 대신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 여권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을 보는 시선이나, 반대로 한나라당이 여권을 보는 시선에는 증오와 적개심만 가득하다.

금년도 겨우 한 달 남았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올해의 한국 정치를 돌아보면 그 세 가지 부족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이 정국을 한없이 꼬이게 했고 나라를 끝없는 분란으로 몰아넣었다. 봄의 탄핵사태에서 여름의 수도 이전 논란, 지금 한창 진행 중인 ‘4대 입법’ 공방전에 이르기까지 정교함도, 실패를 인정하고 뒤를 돌아보는 자세도, 상대에 대한 배려도 찾기 어렵다.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해 보자며 시작했던 ‘여야(與野) 원탁회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공전(空轉)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사례다.

우즈의 세 가지 교훈을 압축하면 실력과 겸손이다. 실제로 실력 있는 골퍼는 으쓱대지 않는다. 공을 칠 때 머리를 들지 않고 어깨에 힘을 주지 않는다. 동작도 유연하다. 그래야 공의 방향이 반듯하고 거리도 많이 난다고 한다. 정치도 그와 다를 게 없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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