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7년 北경수로 공사비 결정

  • 입력 2004년 11월 2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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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제1차 북한 핵 위기를 잠재우는 데 든 돈은 얼마일까. 그 여진이 지금도 계속되는 만큼 최대 비용은 계산할 길이 없다.

다만, 최소 비용은 97년 11월 25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에서 결정됐다. 51억7850만달러.

94년 북한과 미국간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에 공급하기로 한 경수로 2기의 총 공사비였다. 당시 환율은 1달러에 1000원. 우리 돈으로는 5조1785만원이었다. 한국은 이 가운데 약 70%(당시 3조6300억원)을 부담키로 했다.

경수로는 1차 북핵 위기를 해소할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무기용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어려운 경수로를 제공하고, 그 대신 북한이 흑연로 3기를 해체하면 핵의 망령은 한반도를 떠날 줄 알았다. 당시 김영삼(金泳三) 정부로서도 남북정상회담(94년 7월 25일 예정)을 앞두고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국형 경수로 제공은 결국 ‘자승자박’이었다. 북한은 그때도 미국만 상대하려 했다. ‘한국 표준형 경수로는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트로이 목마’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6개월 예정이던 경수로 공급 협상이 14개월을 끈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KEDO 사무총장도 미국인이어야 하고, KEDO와의 모든 협상에서 미국인 수석대표를 원했다. 공사비 한 푼도 안 내는 미국이 KEDO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다 북한 덕이다. 그런 미국이 지금은 경수로 공사 완전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제 한국형 경수로 제공은 ‘천덕꾸러기’나 다름없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KEDO는 지난해 12월 경수로 건설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한국 정부가 경수로 공사비 분담금을 조달하기 위해 99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발행한 국채는 2조2527억원. 이미 거의 다 공사비로 들어간 이 돈이 그 값을 하려면 경수로를 완성해야 한다. 그러나 공사에 들어갈 추가 비용은 무려 3조7000억원이나 된다. 경수로의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하기엔 너무 많다.

지금도 계속되는 2차 북핵 위기의 ‘만병통치약’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값은?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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