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여권의 ‘이중잣대’가 문제다

  • 입력 2004년 9월 10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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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삼성그룹 부사장에게 청와대 관련 행사의 분담금을 내라는 전화를 해 파문이 일었는데도 ‘사후처리’가 석연치 않아 논란이 계속된다. 두 가지가 문제되고 있다. 하나는 민간기업에 비용을 요청한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이 문제가 중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남을 공격할 때 쓰는 주무기가 바로 도덕성이기 때문이다. 친여권 인사들은 반대파를 공격할 때 그들의 도덕적 흠집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공격을 하려면 자신도 똑같은 잣대로, 아니 더 엄격한 기준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하다면 위선이다. 이중 잣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청와대 ‘물의 비서관’ 잇단 복직▼

이번에 문제가 된 비서관은 이른바 보수신문의 정부 비판을 두고 ‘저주의 굿판’이라며 비난했었다. 그런데 잘못된 행동을 하고 거짓말을 한 그 비서관에 대해 청와대는 인사조치를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청와대는 ‘박근혜 패러디’ 사건으로 물러났던 국정홍보비서관을 한 달 만에 국내언론비서관으로 복귀시켰고, 소방헬기를 이용해 가족과 함께 새만금 현장을 시찰한 비서관을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비서관으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 대해 현 정부가 요구하는 도덕성 기준을 적용하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여권 인사들은 야당과 보수세력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당하게 선출된 대통령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사실일 수 있다. 문제는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 한국의 대통령이 어떠한 대우를 받아야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데에 있다.

천도라는 개념을 들먹이고 세종이 아니라 태종이 될 수밖에 없겠다고 말할 때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은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을 조선시대의 왕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독재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쯤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야당이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지만 여당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반민족친일행위 관련법의 개정에 반대하면 유전자 감식을 받아야 할 정도의 한심한 인간이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면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인가. 이쯤 되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잘못엔 관대, 남에겐 냉혹▼

야당이 다수인 국회가 국민여론과 상치되는 일을 하면 국회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여당이 다수인 국회가 국민여론과 어긋나는 일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 할 때에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주장한다면 매우 이중적이다. 야당이 국민 다수의 생각과 어긋나는 입장을 취하면 반민주 세력이고, 국민 다수가 여당과 다른 생각을 한다면 국민의 보수성이 문제라고 하는 것 역시 이중적이다. 자신의 잘못은 과거의 기준에 비추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남의 잘못은 과거의 것마저 현재의 기준을 들이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재단하려는 태도도 이중적이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 주면 양심적 판결이라고 칭송하다가, 자신의 입장과 다른 판결을 내놓으면 늙은 재판관들이 문제라고 비난한다. 사회 원로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고견이고, 자신을 반대하면 기득권 세력의 허튼소리라고 비난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이중 잣대로 남을 비난하고 자신을 옹호하는 일이 만연해 있다. 온 나라가 시끄럽고 불안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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