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보졸레 누보, ‘19세 성년’

  • 입력 2004년 6월 15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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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민법상 성인 연령을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추는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야가 이견이 없다고 하니 관련법이 올가을 국회를 통과해 이르면 2006년부터 만 19세가 되면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결혼과 매매 계약 및 크레디트 카드 발급 신청과 같은 법률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투표권 행사도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만 19세부터 성년으로 간주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과 독일처럼 만 18세부터 성년으로 간주하는 나라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19세는 과연 성인인가. 그 또래 아들을 갖고 있는 부모로서 아이가 과연 제 스스로 설 수 있는 성년인가를 생각해 볼 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5∼10년가량 사회 진출이 늦다.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6년간 수학하고 중고교 6년을 마치면 18세가 된다. 고교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므로 차질 없이 대학을 마치면 22세가 된다. 재수 삼수라도 하게 되면 23, 24세다. 대학 생활 중 어학연수 등을 위해 1년간 휴학하는 사례도 많다. 군 복무를 마치면 훌쩍 27, 28세가 된다.

서양의 젊은이들이 고교를 마친 뒤 직업교육 등을 받고 곧바로 사회로 진출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군 복무 의무가 없어 20대 초반에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것과는 여건이 180도 다르다. 서구 젊은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위해 대학 진학에 앞서 1년 정도의 ‘갭 이어(Gap Year)’를 갖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녀 과(過)보호’ 국가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시키지 않는데다 자녀들이 장성해 시집 장가갈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부모들이 자식의 생계는 물론 술값, 화장품값까지 책임진다. 제 돈으로 혼수 장만해서 결혼식 올리고 집 장만하는 자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늘그막에는 자식이 결혼해서 낳은 손자 손녀에게까지 ‘대(代)를 이어 충성을 바치는’ 것이 한국의 부모들이다. 이 시대 한국의 부모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식의 일생을 책임지는 속죄양(贖罪羊)이다.

국제화 시대에 ‘성인 연령’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를 무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적 독립 지수’와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일이다. 당해연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보졸레 누보가 제대로 된 포도주가 아니듯, 명실상부한 성인이 되려면 상당기간 숙성(熟成)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19세 성년’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제도적 교육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 상태에서 법률적으로만 ‘성인 정년(定年)’을 낮춘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설익은 성년’만 배출하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고교를 각각 5년씩으로 줄이고, 19세 독립 가구에 대해서는 각종 혜택과 지원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부모 또한 자녀들이 성년이 되면 돈과 지원을 끊고 단호히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늙어 죽도록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는 결코 훌륭한 부모라고 할 수 없다. 부모로서는 성년이 된 자식과는 하루라도 빨리 갈라서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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