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문화학이란 무엇인가’…통합연구로 위기돌파

  • 입력 2004년 5월 28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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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이란 무엇인가/하르트무트 뵈메·페터 마투섹·로타 뮐러 지음 손동현·이상엽 옮김/340쪽 1만8000원 성균관대학교출판부

문화학(KuWi)은 독일적 전통에서 등장한 학문 용어다. 한국적 맥락으로 해석하자면 전문화하면서 파편화하고 있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을 통합하는 학제적 연구 일체를 말한다. 독일에서는 언어학 문학 역사학 철학 등 인문학을 ‘자연과학’과 대비해 ‘정신과학’이라고 부른다. 문화학은 이 정신과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1980년대 초 독일 주류학계가 들고 나온 개념이다.

독일에서 정신과학의 위기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정체성의 위기다. 인문학은 보편적 인간 정신을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하기 위한 이론과 실천을 준비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런 보편성의 신화가 도처에서 무너지면서 인문학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둘째, 독일 정신과학의 특징인 ‘형이상학적 기질’로 인해 이런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쳐온 세계적 조류에 뒤졌다는 위기의식이다. 1960년대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을 통해 노동계층의 대중문화를 분석한 영국의 ‘문화연구’나 정치사, 이념사 중심의 역사학에서 탈피해 미시사적 접근을 시도했던 프랑스의 ‘심성사(心性史)’, 그리고 통시적 맥락보다 공시적 맥락을 강조한 미국의 신(新)역사주의는 독일 문화학의 모델이 됐다.

물론 문화학이 독일학계 자체의 전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정신’으로 학문영역이 이분법적으로 분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학문’과 ‘교양’을 통합하려 했던 19세기 초 독일의 언어철학자 훔볼트까지 그 학문적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문화학적 기획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학문적 성취는 부족하다. 이들을 하나의 학문 분과로 묶을 수 있느냐는 ‘슈퍼 학문’에 대한 비판도 치열하다. “문화학은 방법적 정확성, 정밀한 지식, 비판적 반성 형식을 포기하는 대신 여기저기서 유행하는 것들의 수집소를 대변하는 오락적 학문의 상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2000년 출간된 이 책은 이런 비판 속에 문화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시도에서 기획됐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등 독일적 전통에서 문화학의 단초를 찾는가 하면 학문들의 역사, 자연의 문화사, 기술의 문화사, 역사적 인간학, 회상과 기억 등 문화학의 구체적 연구 영역도 제시한다.

독일학계에서 학제간 통합 연구의 화두를 ‘문화’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요약되는 미국식 세계화의 획일화 경향을 저지해야만 한다”는 주장에서 그 문제의식의 본질이 드러난다. 원제 ‘Orientierung Kulturwissenschaft’.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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