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해킹부대

  • 입력 2004년 5월 27일 19시 28분


코멘트
“20××년 ×월 ×일. 수도 서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갖가지 사고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전화, 교통, 금융 등 모든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도시는 일시에 혼란에 빠진다. 국방정보 네트워크 역시 다운돼 각 군간 지휘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나마 전투기 이착륙은 수동으로 이뤄지지만 본부의 전술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눈먼 까마귀’ 신세다. …” ‘해커 전사(hacker warrior)’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남북한 사이버전쟁(cyber war)의 가상 시나리오다.

▷본격 전쟁으로 돌입하는 전 단계를 묘사하는 이런 일들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답은 ‘충분히 가능하다’다. 북한이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에 해킹부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북한이다. 해커 전사를 양성할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잘 키운 해커 한 명, 1만 병사 안 부럽다”는 말에 비춰볼 때 이건 북한에게 놓칠 수 없는 ‘신천지’였을 것이다.

▷걸프전 때 처음 등장한 사이버전쟁 수단은 그 후 유고전(1999년) 등 거의 모든 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사이버 부대’를 창설해 다양한 공격 및 방어수단을 개발하는 등 이 분야 연구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란 쿠바 북한 등 가난한 나라들의 관심도 높다. 수백만달러씩 하는 미사일을 쓰지 않고도 논리폭탄(logic bomb)이나 컴퓨터 바이러스로 적의 신경망을 마비시키는 ‘값싼’ 전쟁수단이기 때문이다. 과거 화생방무기가 ‘빈자(貧者)의 핵무기’로 불렸던 것과 같은 이치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 첨단을 달린다는 한국은 어떤가? 불행히도 그동안 정부 차원의 대비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민간 쪽에서 몇 해 전부터 ‘10만 해커 양성’을 주장하는 등 적극적이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국군기무사령부가 북한의 사이버 공세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한 것은 차라리 때늦은 감이 있다. 북한의 해커 전사가 ‘사이버 대한민국’을 휘젓고 돌아다니게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