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퀘스트’… “한계에 도전하며 희열을 느낀다”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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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긴장 속에서는 감각능력이 확대돼 사소한 사물의 아름다움도 최대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300m 수직암벽인 ‘엘캐피탄’을 한 암벽등반가가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 생각의 나무
모험가들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긴장 속에서는 감각능력이 확대돼 사소한 사물의 아름다움도 최대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300m 수직암벽인 ‘엘캐피탄’을 한 암벽등반가가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 생각의 나무

◇퀘스트(Quest)/크리스 보닝턴 지음 이정임·정미나 옮김/680쪽 3만5000원 생각의 나무

암벽이 있으면 기어오르고, 끝없는 빙원(氷原)은 썰매로 건넌다. 고무보트에 의지해 격류를 헤친다. 푸른 하늘도 1등석의 등받이를 뒤로 젖힌 채 감상할 수만은 없다. 기구에 올라 바람에 몸을 맡기거나, 경비행기의 궤적으로 지구를 한바퀴 휘감는다.

이 책은 대양과 사막에서, 산과 극지와 창공에서 인간 능력의 극한을 시험한 17건의 위대한 도전을 소개한다. 저자는 안나푸르나 2봉과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처음 등정한 산악인이자 그린란드 빙하와 청(靑)나일강 탐험 등에도 도전한 모험가. 장(章)마다 3인칭과 1인칭의 화법을 오가지만, 직접 참여한 모험이 아니더라도 치밀한 인터뷰와 사실적인 서술을 통해 생생한 도전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왜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넘보는 도전에 탐닉할까. 분명 경쟁심은 그 중요한 동기 중 하나다. 세 번째 장의 ‘골든 글로브 경주’는 흥미진진한 승부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프랜시스 치체스터가 1967년 단독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하자 어떤 보급도 받지 않는 무기항(無寄港) 최초 항해의 기록에 수많은 모험가들이 달려들고 이듬해 영국 ‘선데이 타임스’지는 ‘골든 글로브 경주’를 제안한다.

최후의 승리는 영국인 녹스 존스턴이 차지했다. 상어를 피해 배 아래고 잠수해 들어가 갈라지는 바닥을 솜으로 틀어막아가며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그러나 우승컵을 거머쥐지 못한 조연들의 모험담도 그에 못지않게 화려했다.

나이젤 테틀리는 도착 지점 바로 앞에서 선체가 떨어져나가 경주를 포기해야 했다. 도널드 크로허스트는 항해일지를 조작해 ‘최고 속력’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사기극을 마감해야 했다. 베르나르 모아시에테는 결승점에 입항하지 않고 ‘바다에서 영혼의 구원을 얻겠다’며 지구를 반 바퀴나 더 돌았다.

성취에는 당연히 희생도 따른다. 저자가 참가한 나일강 탐사는 두 번이나 강도떼의 총격을 받았고 팀원 한 명을 물결에 잃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에서는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팀원 하나가 얼음에 쓸려가 버렸다.

그러나 모험가들은 위험에 둔감하거나 건망증을 가진 듯하다. 영국 버진그룹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처드 브랜슨은 1987년 스웨덴인 페르 린스트랜드와 대서양 기구 횡단에 나선다. 횡단에는 성공했지만 조종 실수로 바닷물 속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 그런데도 다음해 두 사람은 태평양횡단에 나섰다. 모험은 영하 51도의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8시간이나 구조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8시간 동안 못 말리는 두 사람은 ‘기구 타고 세계일주’를 할 구상을 한다. 연료통 2개를 잃어버리고 하나로 태평양을 건넜으니 세계일주인들 안될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모험에는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육체적 만족감과 함께 그 과정에서 느끼는 위험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위험은 모험의 향취를 더하는 맵고 얼얼한 양념과 같으며, 그 자극은 감각을 고조시켜 생의 본질적 기쁨으로 인도한다는 설명이다.

“양손의 피부가 바위에 쓸려 벗겨졌지만 내려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문득 회색빛 화강암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다. 햇빛 속에서 밝은 빛을 내뿜다 증발돼 사라진다…. 고난이 뒤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폭넓고 풍부한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비로소 희열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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