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동아에 바란다]일장기 지운 정신 영원히 잊지 말길

  • 입력 2004년 3월 31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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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4주년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말을 하라고요? 이런 비유는 어떨까요? “강 선생, 올해 나이가 몇이오? 그 나이면 이제 보수가 될 나이요. 잘 살면서… 제발 보수가 되시오. 젊은 사람처럼 굴지 마시오….” 그러고 보니 동아일보도 어느새 팔십사세…보수가 될 나이도 훨씬 지났군요.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라고요? 그러면 또 비유 하나를…. 어떤 영문학 교수가 “세계에 여류시인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류시인은 없었다.” 얼핏 들으면 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보들레르도, 한용운도, 여자가 아니었지요.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동안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가 역사의 전면에 나올 처지는 도대체 아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같은 지성인도 “영국 여자는 그리스 노예의 아들보다 못하다”고 통곡하였으니까.그런 산술 비교는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거기에 지방이라는 악재가 있습니다. 남자도 지방에 살고 있으면 일단 주눅이 드는 현실이니까요. 지방에서 그림 전시를 하려던 내 친구 화가는 그림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했다면서 미안해했습니다. 화랑의 문이 작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지방의 모든 것들은 문이 작은 화랑인 셈입니다. 늘 ‘소외’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 더? 아마 그 박물관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겁니다. 건물은 서울의 유학파 건축가가 지은 바람에 아주 근사합니다. 유럽의 어떤 도시에 온 기분이라니까요. 그런데 안에 들어가 보면 컴퓨터 모니터 같은 그 근사한 기기들이 다 놀고 있고… 유물이 몇 점 없는 바람에 근사한 방들은 거의 비어있다시피 합니다. 물어보면 모두 “지방이기 때문이랍니다”. 아, 지방의 문화!

그러면 팔십사세 된 동아일보여, 할 차례가 되었군요. 식민지시대를 잊지 말라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식민지시대, 창가를 실었던, 손기정 마라토너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냈던 그 정신과 눈으로 우리 사회의 인간들을, 우리의 상황들을 보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묘한 보수의 논리에서 벗어나 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동아일보는 나의 젊은 시절, 뭔가 프리미엄을 주던 신문이었으니까요. ‘거기 실렸으면…거기 실렸네’ 하던 신문이었으니까요. 장자의 한마디를 더 붙이기로 하죠. 장자의 ‘심재(心齋)’의 한마디를….

‘저 텅 빈 것을 잘 보라.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방에 눈부신 햇빛이 비쳐 환히 밝지 않느냐.’

강은교 동아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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