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사면법 거부’ 잘못된 결정이다

  • 입력 2004년 3월 28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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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사면법 개정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것은 거부권의 남용이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자의적인 행사를 허용하는 헌법상의 권한이 아니다. 우리 역대 대통령들이 정략적 목적으로 남용 악용해 온 사면권 행사로 인해 권력분립에 의한 사법권이 침해되고 준법정신이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사면법 개정의 필요성은 일찍부터 제기되어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문제였다.

▼정치목적 특별사면 남발 막아야 ▼

사법부의 재판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사면권을 무분별하게 정략적으로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이 부여한 사면권의 근본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극심한 정치부패도 과거 대통령에 의해 남용되어 온 사면권의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권력형 부정 비리로 사법 처리된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에게 속죄와 반성의 기회도 주지 않고 판결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원칙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특별사면을 해 줌으로써 법의 존엄성을 우습게 여기는 반 법치주의적인 그릇된 풍토를 조성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5년간 모두 7회의 사면권을 행사해 무려 1037만여명(벌점 감면자 포함)을 사면했다. 이러한 사면권 남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컸던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하기 전에 미리 국회의 의견을 들어 보도록 최소한의 대의적인 통제장치를 마련한 것이 사면법 개정 법률안이었다.

고 대행은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개정 법률안의 위헌적인 요소를 들었다. 그러나 이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법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절대적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헌법은 대통령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하기 전에 국회의 의견을 들어 보도록 견제적인 절차를 규정한 것은 우리 헌법에 비추어 보거나 헌법 이론적으로 전혀 위헌적 요소가 없는 정당하고 필요한 입법 개선이다.

그런데도 특별사면에 국회의 의견 청취를 필수 절차로 정한 법률 개정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적, 초헌법적인 논리다. 국회의 동의를 헌법상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일반사면과 마찬가지로 특별사면에도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사면법을 고쳤다면 분명히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의가 아니라 단순히 의견 청취만을 하도록 고친 것뿐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그러한 개정이 왜 위헌인지를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설령 국회가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다고 해도 대통령은 법적으로 국회의 의견에 기속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회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책임으로 특별사면을 하면 된다.

법리가 이처럼 명백한데도 고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피치 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다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얼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축소하려는 법무부 장관의 방자한 월권적인 언동도 있었고,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사면법 개정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주도록 요구했다는 보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의견청취’ 위헌요소 없어 ▼

지금 줄줄이 사법 처리되고 있는 대통령의 ‘동업자’ 내지 측근들을 머지않아 쉽게 특별사면하기 위해 최소한의 견제장치마저 미리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 대행은 엄연히 헌법에 의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야 한다. 그런데도 권한 행사가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살피는, 한낱 대리인 역할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고 대행은 헌정사상 처음 경험하는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태로 어려운 역사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럴수록 중심을 잡고 우리 헌정 질서를 바르게 이끌어 나갈 책임과 의무가 있다. 고 대행의 사면법 개정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우리 헌법정신과는 거리가 먼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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