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정갑영/경제정책은 어디로 갔나

  • 입력 2004년 4월 4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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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점차 한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도널드 존스턴은 한국의 가장 시급한 두 가지 현안이 바로 산업 공동화와 중국과의 경쟁이라고 지적한다. 이 곤경에서 빠져나오려면 한국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정책’은 멀리하고 정치에만 승부를 건다. 그들은 한국 역사를 복습해볼 필요가 있다. 수세기 동안 중국 황제는 조선의 새 왕을 승인해줬다. 물론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는 않겠지만, 과연 한국 경제의 미래는 누가 지배하겠는가?”

▼경제 살리기 공약 구체성 안보여 ▼

며칠 전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의 커버스토리에 실린 한 대목이다. 세계 언론의 지적대로 한국경제가 또다시 정치에 발목을 잡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4·15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새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여전히 세대갈등과 지역감정 같은 낡은 정치로 표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기만 노리는 공약(空約)으로 바람몰이까지 하고 있으니, 어떻게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는가.

‘경제 살리기’를 표방하는 여야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더욱 한심하다. 여당은 ‘탄핵심판’으로, 야당은 ‘거대여당 견제’로 승부를 몰아갈 뿐 경제 살리기는 장식용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어느 당도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정책을 유권자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각 당의 홈 페이지 귀퉁이에는 갖가지 복지대책과 그럴듯한 실업해소 대책이 올라와 있지만 모두 졸속으로 제목만 뽑은 인상이다.

각 당이 진정으로 경제 살리기에 주력한다면, 여당은 구호로 외치는 ‘탄핵심판’을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경제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야당 역시 ‘거대여당 견제’라는 구태의연한 하소연을 접어두고 민생의 계기를 만드는 경제정책으로 정면승부를 걸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경제 살리기는 찾아볼 수 없고 탄핵역풍과 견제논리만 난무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이라면 이 어려운 경제침체기에 고용과 투자를 살리고 노동시장의 선진화를 달성하며 내수침체는 무엇으로 해소하겠다는 비전 정도는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책일수록 선거를 통해 여과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마다 아무런 색깔도 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정책만 나열한다면 유권자가 무얼 보고 정당에 투표하란 말인가.

정치권이 정책은 멀리하고 정치적 승부에만 올인(all in)하는 동안 글로벌 경제 속의 한국경제는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호황 속에 유독 우리 경제만 침체를 거듭하고, 설비투자의 정체와 성장률의 하락으로 실업자만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잠재적 성장기반의 훼손으로 미래의 성장동력마저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국가의 신용등급도 중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뒤바뀌었다. 신흥경제권의 성장과 고용이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만 우리에겐 먼 다른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겨우 수출이 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원자재와 환율 등 시장의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 가고 있다.

▼한국이 그렇게 한가한 나라인가 ▼

이런 와중에 지금 우리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 하나 없이 총선거를 치르고 있다. 정책보다는 오히려 지역과 세대, 막연한 국민정서와 감정에 흔들리며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총선 이후에 어떤 정책이 도입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표를 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당장 여야는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구체적으로 표방해야 한다. 고용창출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투자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해 유권자의 선택을 구해야 한다. 국민이 경제정책을 놓고 정당을 선택해야 경제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겠는가. 한국이 과연 경제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논쟁만으로 소일할 만큼 그렇게 한가한 나라’인가. 세계 언론들의 지적을 왜 우리만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정갑영 연세대 정보대학원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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