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치매 고려장

  • 입력 2004년 3월 22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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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처럼 망령나면 혀 깨물고 죽을 거야! 자식한테 짐 되는 거 정말 싫어! 다른 병은 다 걸려도 망령은 안 날 거야!” KBS 2TV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엄마(고두심 분)가 치매 걸린 사돈 할머니에게 퍼붓는 장면이다. 치매 걸리고 싶어 걸리는 노인이 어디 있을까. 할머니도 한때는 경위 바르고 깔끔하기로 소문났던 시어머니였다. 삶의 질곡을 알면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작가 노희경은 여기에 놀라운 복선을 숨겨 두고 있다. 망령난 사돈 할머니가 바로 자식밖에 모르는 엄마의 미래 모습이라는 거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8.3%인 30여만명이 치매를 앓는다. 생활수준 및 의료기술 향상과 함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건 고맙지만 치매환자도 더불어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선 85세 넘은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고 본다. 10년째 이 병을 앓고 있는 92세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부부사랑이 유별났던 낸시 여사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고 했다지만 환자 못지않은 고통을 겪는 게 보통 사람이다. 둘 중 하나는 우울증에 걸리고 열 명 중 한 명은 다치거나 아프게 된다는 통계도 있다.

▷치매로 요양 중이던 어머니를 을숙도 광장 휴게소에 버린 40대 장남의 ‘현대판 고려장’은 많은 이를 우울하게 한다. 몸무게가 38kg밖에 안 되는 늙은 어머니였다. 보험금을 노린 살해 가능성도 있다지만 아들은 월 140만원의 급여로는 간병비와 치료비를 대기 힘들어 몹쓸 짓을 했다고 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만 돼도 무료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나 그 기준을 35만원쯤 넘어서는 그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효심만 가지고는 치매노인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기가 부모 되고 부모가 아기 된다’는 옛말에 의지하자면 거의 도 닦는 수준이 돼야 한다. 2007년부터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에게 간병과 치료비용을 80%까지 지원하는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실시된다니, 노부모를 모신 집에서는 그때까지만이라도 제발 발병하지 않기를 빌어야 할 것 같다. 그전에도 건망증이 심해지면 미리미리 진찰받아 가족 부담을 덜어 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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