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

  • 입력 2004년 2월 20일 17시 25분


황장엽 명지대 석좌교수

황장엽 명지대 석좌교수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통일정책연구소 엮음/379쪽 2만원 예문서원

북한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북한 독재체제의 본질을 잘 파악할 수 없다. 오늘날 주체사상에 대한 그릇된 해설이 널리 유포돼 북한의 실태를 인식하는 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5년간 정기적인 학술모임을 가져온 통일정책연구소의 연구위원들을 중심으로 젊은 철학연구자 7명이 함께 펴낸 이 책은 아마도 북한의 지도사상을 가장 정확하고 폭넓게 소개해 독자들이 그 사상의 본질과 북한 주민들의 사상 정신 상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철학인 인간 중심 철학을 그 철학적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과학적 문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들은 첫째, 북한 주체사상의 형성 과정과 수령 절대주의 이데올로기로 파산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주체사상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밝혀내고 있다. 둘째, 세계 속에서 이뤄지는 인간 운명 개척의 가장 보편적 방도를 밝혀내는 데 철학의 사명이 있다는 점을 포착하고 철학의 근본문제를 비롯해 세계관 사회역사관 인생관의 근본원리를 통해 이를 명확히 해명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이상은 계급적 차별과 불평등이 완전히 제거된 무계급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었으며 그들은 그런 이상이 계급투쟁과 무산계급독재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종래의 국가를 지배계급의 폭력적 도구로 보고 노동계급에는 조국이 없다고 생각하며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만을 조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고방식이 국가와 민족을 기본단위로 사회생활이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현실에 맞을 수 없었고 그것은 각국 공산당의 자주적 활동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부에서는 소련에 대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반대하고 혁명이론을 각 나라의 민족적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고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주체사상이 출현했다. 그런데 낡은 지배계급이 청산되고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돼 계급투쟁과 무산계급독재의 대상이 없어지면서,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에서는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와 개인독재를 반대하고 집단적 지도체제를 수립해 민주주의적 자유를 점차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그러나 봉건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민주주의적 정치문화 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장기 집권해 온 북한의 독재집단은 자기식의 주체를 세운다는 명목 아래 마침내 스탈린식 계급독재를 봉건 가부장적이고 전제주의적인 수령의 개인독재로 전환시켰다. 주체사상은 결국 마르크스주의와도 멀리 떨어진 수령절대주의로 변질됐다. 이런 역사적 환경 속에서 주체사상을 민주주의화할 목적으로 창시된 철학이 다름 아닌 인간중심 철학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바로 이 인간중심 철학의 핵심이자 우리 현실의 근본과제인 민주주의론을 집중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철학이 현실에서 가지는 의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국가를 기본단위로 하는 생활공동체의 원리에서 세계를 단위로 하는 생활공동체의 원리로 발전하는 과도적 단계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를 역사 발전의 기본 추세에 맞게 개선 완성하는 것은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어렵고도 중대한 문제인 만큼 이 문제 해결에 시대의 양심과 지혜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지식인들은 온갖 편견을 버리고 허심탄회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 나가야 할 것이다.

황장엽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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