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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0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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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졌다. 전략적 가치를 계산해 소련이 쿠바에 제공해 온 막대한 재정원조는 중단됐다. 소련과 동유럽이 쿠바에 값싸게 제공해 준 식량과 석유는 엄청나게 줄었다. 식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쿠바는 ‘영양실조 나라’로 전락했다. 공장과 차는 멈췄다.
체제 붕괴의 호기로 여긴 미국은 이미 수십년간 지속해 온 경제봉쇄를 더욱 강화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는 이미 피폐해진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갔다. 1990년대 초반의 쿠바는 끝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드는 듯했다. 하지만 쿠바의 절망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표현을 빌리면 ‘인류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의 프롤로그가 됐다.
이 책은 희망의 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쿠바가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는지를 소개한다. 본디 자연의 순환질서 속에서 존속해 온 농업의 근대화는 자연의 배제를 기본으로 했다.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하는 화학농법은 흙의 생명체들이 주는 상생의 가치를 박탈하여 땅을 그저 작물이 뿌리내리는 공간에 지나지 않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행은 쿠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비에트 체제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 화학비료와 살충제 사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식량 생산과 소비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쿠바는 자연의 순환 질서를 농업과 도시공간에서 실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미생물 비료, 바이오 농약 등 최첨단 바이오 기술로 대체했다. 지렁이 퇴비나 돌려짓기 같은 순환농법도 부활시켰다.
그 결과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멸종위기에 내몰렸던 토착 종자가 복원됐다. 도시는 소비와 폐기물을 배출하는 공간에서 식량 생산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수도인 아바나 면적의 40%가 텃밭, 개인 농가, 기업 농장, 자급 농장 등으로 전환됐다. 전국적으로는 도시농업으로 전체 쌀의 65%, 채소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하고 있다. 도시농업 활성화는 식품의 장거리 수송에 따른 비용과 에너지 소비도 줄였다.
농법의 전환은 식량위기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도 함께 가져왔다.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되고 관제조직 대신 자율적인 민간단체들이 급성장한 것이다. 에너지 체제도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은 녹색사회로 탈바꿈하는 쿠바의 현장 곳곳에 대한 이야기와 이를 이루는 사람들의 열정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맺는 글에서 슬쩍 고백하듯이 쿠바의 상황을 너무 미화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희망의 한 자락을 현실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값진 깨달음을 준다.
남상민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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