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접대비 쪼개기

  • 입력 2004년 2월 6일 21시 06분


코멘트
폭탄주와 호스티스로 이어지며 하룻밤 술값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한국의 야간 접대문화는 외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한미은행을 인수한 미국 투자회사의 한국인 직원이 친구들에게 보낸 e메일이 외국 경제통신에 보도돼 나라망신을 산 적이 있다. ‘여러 은행의 임직원들에게서 골프 저녁식사 술대접 등 향응을 받는다. 한강이 내다보이는 내 아파트의 침실은 젊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여성단체에서도 룸살롱 접대의 손비 불인정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기업들의 룸살롱 접대비가 2000년 3500억원에서 작년에는 9500억원으로 16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기준 기업들이 지출한 전체 접대비의 3분의 1가량이 호화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돈이다. 국세청은 최근 50만원이 넘는 술값을 손비로 인정받으려면 신용카드 매출전표나 영수증 뒷면에 접대한 상대방의 신분을 기록하도록 접대비 처리규정을 고쳤다. 50만원 이상의 접대는 주로 룸살롱과 골프장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성 향응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없지 않은 룸살롱 영수증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고객은 없을 것이다. ▷‘접대 실명(實名)제’는 접대문화의 건전화 투명화라는 순기능이 많지만 부작용도 큰 것 같다. 비즈니스에서 접대비는 불가결한 영업비용이다. 접대 형식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금액에 제한을 두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회 전체의 접대문화는 그대로인데 세금 규정만 바뀌니까 편법이 난무한다. 강남 룸살롱가에서는 이웃 업소끼리 49만원짜리 영수증을 서로 끊어주는 ‘술값 쪼개기’가 성행하는 실정이다. 장부의 이중기재를 부추길 우려도 있다.

▷모 그룹 회장은 “접대비 속에는 임원들의 복지비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갑작스럽게 제도가 바뀌어 임금 삭감 이상의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제도가 바뀌는 수도 있고 정책이나 제도가 먼저 바뀌어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먼저이든 간에 거래처 또는 회사 돈으로 술과 성의 향응을 질펀하게 즐기는 시대가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접대비도 알뜰하게 쪼개 써야 할 판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