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통제된 검찰’의 유산

  • 입력 2004년 1월 13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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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더니 새해 들어서는 ‘방탄국회’의 우산 아래 숨어 지내던 여야 국회의원 8명이 구속 수감됐다. ‘죽은 권력’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의 위상은 확실히 구시대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대선 때 노 대통령을 음양으로 돕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죄목으로 엮여 들어가자 청와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대해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청와대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9일 노 대통령이 일부 측근비리에 직간접으로 개입됐다는 검찰 발표가 나오고 나서 청와대 심기가 고르지 않은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감지된다. 이병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침대에 사람을 맞추는 수사”라고 했고 “정치권은 말조심하고 일부 언론은 글조심하라”는 말도 나왔다.

한나라당에서는 ‘502 대 0’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형평성 시비로 검찰을 압박한다. 김영일 의원이 구속되자 최병렬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미안한 얘기지만 법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상수 의원도 구속해야 마땅하다”는 말까지 했다.

재계 쪽에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통제된 검찰’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과거에는 이런 수사를 막기 위해 대선자금을 제공했는데 지금은 바로 그 대선자금 때문에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달리 검찰을 ‘놓아 주면서’ 생긴 현상이다. 얼마 전 박관용 국회의장은 “노 대통령은 포기 안 해야 할 것을 포기하려는 것 같다”며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을 포기하면 만날 쿠데타가 생기고, 검찰통제권을 포기하면 검찰공화국이 돼 사회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청와대와 검찰 관계를 체험한 이의 발언이니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은 헌법 74조에 명문화돼 있지만 헌법과 법률 그 어느 구석에도 검찰통제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이 민정 혹은 사정수석비서관을 통해 검찰수사에 관해 보고받으며 수사의 방향을 틀던 관행은 합법적인 권한이 아니었다. 청와대가 불편하고 정치권이 불안하다고 해서 통제된 검찰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시대 역행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막강한 소추권과 경찰수사 지휘권을 가진 검찰 권력도 이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정부 출범 초기에 젊은 검사들이 인사권을 검찰에 넘겨달라는 주장을 폈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은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 놓아주어서는 안 될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국회도 입법권과 국정감사권을 통해 검찰을 견제할 수 있다. 과거에는 검찰이 수사하고 손을 털면 끝이었으나 지금은 특검법에 의해 특별검사가 검찰 수사를 검증할 수 있다. 사법부는 영장 심사와 기소된 사건의 재판을 통해 검찰을 견제한다.

이렇게 검찰 견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치권력이 검찰통제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 비리가 난무하고 불법 대선자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통제된 검찰’의 시대가 남겨준 유산이다.

황호택 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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