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일영/세배와 사랑방 정치

  • 입력 2004년 1월 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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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세배 정치’가 화제다. 퇴임 이후 외부 활동을 삼가던 김 전 대통령이 새해를 맞아 동교동 자택을 개방하자 1500명이 넘는 세배객이 몰렸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 불개입 원칙을 분명히 밝혔지만, 언론은 ‘DJ식 무위(無爲)정치’ ‘4월 총선에서의 DJ 효과’ 등의 용어를 써 가며 그의 언행에 담긴 ‘불개입의 개입’을 읽어내려고 애썼다.

▷3김 시대까지의 한국정치는 ‘사랑방 정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매일 아침 계보 보스의 집 사랑방에서 열리는 계보모임이나 가신회의에서 이루어졌고, 당의 공식기구인 당무회의는 그것을 추인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 무렵 정치인은 물론이고 기자도 출근 자체를 보스의 집 사랑방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의 안국동 한옥은 이런 사랑방 정치의 고전적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무대였던 것 같다. 주거형태가 양옥으로 바뀌면서 3김 시대에는 무대가 응접실로 바뀌었지만, 정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를 당의 공식라인보다는 비공식적인 계파나 가신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응접실 정치’는 사랑방 정치와 차이가 없었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의 산출이다. 이 점에서 18∼19세기 프랑스의 살롱이나 카페, 영국의 클럽 등은 근대정치의 산실로 볼 수 있다. 그곳은 단순히 상류계층의 사교장이라기보다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남녀와 신분을 초월한 대화와 토론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몽테스키외가 ‘살롱을 열고 있다’를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와 동일어로 쓸 정도로 살롱은 대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바로 거기서 프랑스혁명의 사상이 움텄다.

▷최근까지 한국정치의 중심을 이루었던 계보 보스의 사랑방이나 응접실은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의 장소라기보다는 밀실 결정과 음모의 원산지였다는 점에서 서구의 살롱이나 카페와는 달랐다. 이런 사랑방 정치가 정초에는 ‘세배 정치’로 나타났다. 세배야 우리의 미풍양속이니 탓할 바 없지만, 그것이 사랑방 정치와 결합되면 세배 정치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3김 시대도 끝났으니 그와 함께 사랑방 정치도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김일영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 iy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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