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청와대 서열 깬 '王 특보'

  • 입력 2004년 1월 2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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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가 열린 2일 아침, 청와대 회의실에서는 자리배치를 놓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평상시처럼 대통령 오른쪽에는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이 앉았지만 왼쪽에는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특보가 자리를 차지했다.

대통령 왼편은 원래 정책실장이 앉는 자리. 그러나 신임 박봉흠(朴奉欽) 정책실장은 문 실장의 왼편인 ‘3석(席)’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배치는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이 양 축을 이루는 대통령비서실의 조직 체계와도 맞지 않는 기형적인 것이다.

정책특보는 대통령비서실 조직도에는 아예 없는 직위인데도 장관급 정책특보를 신설하면서 ‘없는 자리’를 만들어 배려한 셈이다.

이에 대해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정식 의전상 서열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책기획위원장 자리는 수석비서관이나 보좌관 다음 서열이지만 정책특보를 겸하고 있는 이 특보의 정확한 위상을 잡기가 어려워 배려를 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자가 자리 문제를 굳이 거론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청와대는 대선 자문교수단 출신인 이 특보를 정책실장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모양을 갖춰 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실제 선비 스타일인 이 특보가 ‘물을 먹었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청와대 내부에서 많이 새나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물러나는 사람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고 핵심 참모들은 전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리배치를 기형적으로 하면서까지 이 특보를 감싸는 인상을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벌써부터 청와대 안에서는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의 업무 분담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애매하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왕 특보’를 위한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책 현안의 조율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사공(정책실장)을 경질한 마당에 정작 처음 하는 일이 선장 좌석을 두 개나 만들어 놓는 것이라면 배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최영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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