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원로 극작가 이근삼씨…현대연극 씨앗뿌려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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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이근삼씨(가운데)는 올 2월 암 투병 중에도 자신의 희곡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가 공연되기 전 연습실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왼쪽은 연출가 고승길씨, 오른쪽은 배우 권성덕씨. -동아일보 자료사진
극작가 이근삼씨(가운데)는 올 2월 암 투병 중에도 자신의 희곡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가 공연되기 전 연습실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왼쪽은 연출가 고승길씨, 오른쪽은 배우 권성덕씨. -동아일보 자료사진
28일 별세한 극작가 이근삼(李根三)씨는 한국 현대 연극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고인은 연극의 공간적 개념을 확장시키고 음악적 요소를 삽입하는 등 연극 표현의 폭을 넓힌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연극 100년’(서연호 이상우 저·현암사 간)은 한국 현대 연극의 시작을 1960년대로 잡고 있다. 60년대 들어 사실주의적인 근대적 연극 경향을 벗어나 ‘탈(脫) 사실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탈 사실주의 연극의 효시로 고인의 작품 ‘원고지’가 꼽힌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문학과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중학교 입학 전 세계문학전집을 거의 다 훑어보았고, 돈만 생기면 서적상을 뒤졌다. 평양사범에 진학해서는 몰래 꾀를 부려 영화 구경을 다녔는데 당시 황철(黃澈)이라는 배우가 좋았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는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로 유학을 떠났다. 희곡문학 전공의 학자 지망생이었지만 “극작 재능이 있으니 희곡을 써보라”는 지도 교수의 권유에 따라 영어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 쓴 희곡 ‘끝없는 실마리(The Eternal Thread·1958)’와 ‘다리 밑에서(From Below The Bridge·1959)’ 등은 당시 미국 현지에서 공연되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그는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국내 연극계에는 1959년 ‘사상계’에 ‘원고지’를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번역 기계처럼 사는 중년 교수의 고단한 삶을 풍자한 이 작품은 이듬해 1월 신무대 실험극회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이후 그는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62) ‘국물 있사옵니다’(1966) ‘유랑극단’(1972) ‘일요일의 불청객’(1974) ‘꿈 먹고 물 마시고’(1981) ‘막차 탄 동기동창’(1987) 등 세태를 풍자한 희곡을 발표해 한국의 대표적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69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199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극작법을 강의하면서 연출가 정진수 김철리씨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1998년 발표한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는 올 3월 권성덕씨 주연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해 8월 폐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당시 투병 중이면서도 공연장을 두 번이나 찾았다. 권씨는 “선생께서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며 “당신의 인생을 이 작품의 주인공에 빗대면서 감상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씨는 “선생은 연극배우들에게 칭찬과 격려로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던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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