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차라리 신용카드를 버리시죠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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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가 신용의 상징이 아니라 불신(不信)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잘 나가던 신용카드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가 간신히 살아난 이후의 일이다. 편리하다고 칭찬할 때가 언제였더냐 싶게 신용카드가 ‘공공(公共)의 적’으로 몰리고 있는 듯하다.

신용카드회사의 금고가 텅 비어 현금서비스를 중단하자 주가가 갑자기 떨어지고 환율이 요동을 쳤다. 너도나도 ‘카드 대란’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6년 전 외환위기 때의 악몽이 떠올랐을 법하다. 당시에도 부실 금융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지 않았던가.

요즘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공장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부쩍 늘고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처지다. 신용카드회사마저 부도를 내서 지금보다도 더 악화된다니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이 지경까지 만들었단 말인가. 진범을 찾아 혼쭐을 내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런 말이 나올 때가 됐다.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외환위기의 진범이 누구인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당시 외환위기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한국기업들이 과다한 차입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됐다.

만약 카드 대란이 발생해 엄청난 혼란과 경제적인 위기가 초래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무리하게 회원수를 늘린 카드회사가 주범으로 찍힐 것이다. 직업도 소득도 없는 학생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 게 ‘죄목’일 터이다. 정부도 신용카드회사의 ‘비행(非行)’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지 않을까.

LG카드 사태 이후 나올 신용카드 대책도 뻔한 수순이다. 지금까지와 정반대로 신용카드 사용한도를 줄이고 소득이 없는 청소년에게 신용카드를 내주는 회사를 처벌하는 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희생양이 될 ‘주범’을 찍어 혼내주고 나서 잊혀지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한바탕 ‘마녀사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했다고 해서 신용카드 대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제2, 제3의 카드대책이 나와도 모자랄 판이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내수 위축으로 경제만 골병이 들게 될 뿐이다.

차분히 따져볼 게 있다. 과연 우리는 신용카드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쓸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무면허 운전자에게 자동차 운전을 하라고 핸들을 맡긴 꼴은 아닌가. 무면허 운전자가 과속으로 사고를 내듯이 소득도 없는 카드소지자들은 우선 쓰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신용불량자로, 전과자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신용카드는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발급되어야 옳다. 이번 기회에 신용카드 ‘소지면허제도’라도 제대로 만들 일이다. 은행들이 갚지 못할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지 않는 것처럼 신용카드를 받으려면 먼저 지켜야 할 일이 있다. 신용카드 소지자들에게 제대로 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신용카드를 제대로 쓸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신용카드를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다. 신용카드가 없이는 살기 어렵다는 ‘신용카드의 나라’가 미국이라지만 거부(巨富) 워런 버핏도 “부자가 되려면 신용카드부터 잘라 버리라”고 충고하지 않던가.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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