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오랑캐꽃'…'좌익 집안' 남매의 파란만장한 삶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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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양헌석 지음/364쪽 9000원 실천문학사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한국에도 ‘성분’의 차별은 있었다. 누구나 그것을 느낀 것은 5공 정권이 ‘연좌제 폐지’를 공표하고 난 뒤였다. 그 뒤에도 오래도록 ‘신원’은 보이지 않게 여러 사람의 발에 채워진 족쇄였다. 느끼지 못했다면, 그 족쇄를 달고 다니는 누구도 그 사실을 소리 높여 외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편소설의 두 주인공처럼, 오늘날 40대 후반이 된 세대는 그런 측면에서 일종의 ‘경계’에 서 있다. 사회생활을 눈에 띄게 제한 당하지는 않았지만, ‘좌익 집안’의 낙인은 그들의 머리 위에 영원히 물러가지 않을 먹구름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월북하려다 미수에 그친 미전향 장기수의 자녀인 윤기립과 지원 남매. 한 살 차이의 오누이이지만, 심약하고 모든 면에서 신통치 않은 기립이 1년 재수한 탓도 있어 두 사람의 세대감은 완벽히 동질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밟아가는 삶의 궤적은 딴판이다.

지원은 삶에 적극적으로 부딪쳐 좋은 대학을 나와 신문기자로, 작가로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 대학시절부터 연극판만 쫓아다닌 기립은 이런저런 직장을 옮겨 다니고 가정마저 파탄을 겪지만, 우연히 투자한 벤처 주식이 ‘대박’을 쳐 벼락부자가 된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나 강건하게 뿌리내리고 살아온 듯한 지원은 이민을 결심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시점을 차례로 교차시키면서 진행된다. 연민이 얽히다 못해 마치 연인과 같은 정까지도 느끼는 오누이는 죽을 때까지 사회의 영원한 부적응자였던 손위 형제들의 묘소를 찾는다. 두 사람의 회상 배경에는 80년대 기자들의 모순된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 왜곡된 기업문화와 군대의 조직문화 등이 어두운 시대의 풍경으로 흐른다.

82년 소설문학 신인상을 받기도 한 작가가 13년 동안의 침묵 끝에 내놓는 장편소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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