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속보이는 임시국회 타령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8시 31분


코멘트
정치권에서 정기국회 폐회(12월 9일) 이후 임시국회 소집을 기정사실화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겉으로는 정치개혁 입법과 새해 예산안을 깊이 있게 심의하자는 것이 임시국회 소집의 주된 이유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는 16일 “새해예산을 2조원 삭감한다는 방침을 정한 만큼 예산심의를 철저히 해야 하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도 적지 않아 임시국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정치관계법은 정치권의 이해가 걸린 사안이어서 쉽게 타결되기 어렵고, FTA 비준안 역시 농가 피해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농어촌 출신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열린우리당도 정치개혁이나 FTA 비준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필요할 경우 연말 임시국회를 열어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정치권이 총선 준비에 바쁜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임시국회를 열어 국정을 꼼꼼히 챙기겠다는 것은 말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두 손을 들어 환영해 줘야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정기국회의 막후를 들춰 보면 과연 임시국회를 소집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먼저 정치개혁 관련법 협상만 해도 여야 정치권의 ‘명분 따로, 속셈 따로’ 때문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목요상(睦堯相)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은 “솔직히 각 당이 결심만 하면 합의에 하루도 안 걸리는 것들”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FTA 비준안도 “총체적 국익을 생각하면 당장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비준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나라야 어떻게 되든 농민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눈치만 살피는 의원들과 각 당 지도부의 무소신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각 상임위에서 자리를 지키는 의원이 3, 4명에 불과하고 본회의나 예결위 회의장도 핵심 안건이 없는 한 의원정수의 4분의 1을 채우기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동화(空洞化)’돼버린 이런 국회의 실상에 비춰볼 때 연말 임시국회를 소집해본들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그래서 정기국회 폐회 후 소집될 임시국회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몰고 올 폭풍우에 대비한 ‘방탄국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야가 담합을 해서 검찰 수사에 바리케이드를 쳐두려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열려 있는 정기국회부터 똑바로 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박성원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