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르 몽드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19분


코멘트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Le Monde)의 제호는 거창하다. 프랑스어로 ‘세계’라는 뜻이니 뉴욕 타임스 등 도시 이름을 빌려 쓴 신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독일에는 디 벨트(Die Welt), 스페인에서는 엘 문도(El Mundo)가 역시 세계라는 뜻의 제호를 사용하고 있으나 세계적 명성은 르 몽드에 못 미친다. 1944년 위베르 뵈브 메리가 샤를 드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신문을 창간하면서 드골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호를 르 몽드로 정했다는 사연 또한 만만치 않다.

▷르 몽드의 자존심 또한 세계적 수준이다. 르 몽드는 발행일을 실제 신문 발행일 다음 날짜로 기록한다. 오늘 발행되는 르 몽드의 발행일은 11월 7일이 아니라 11월 8일이다. 전국지로 출발한 르 몽드의 역사에서 이상한 전통이 시작된다. 석간인 르 몽드를 파리에서 인쇄해 부지런히 철도와 자동차를 이용해 지방에 보내지만 대부분 다음날이나 돼야 도착한다. 독자들에게 하루 지난 신문을 배달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채택한 전략이 발행일 하루 앞당기기였다.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르 몽드는 프랑스 전역이 1일 생활권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하루 앞선 신문을 만든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르 몽드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정론 보도가 권위지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한국인들은 90년대 중반 오페라 바스티유와 음악감독 정명훈씨의 송사를 통해 르 몽드의 권위를 체험했다. 한국인과 프랑스국립극장의 송사를 다루면서 르 몽드는 사실관계만 따졌을 뿐 단 한 차례도 외국인인 정씨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필자는 파리특파원 시절 ‘르 몽드의 공정한 정명훈 보도’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흔쾌하게 프랑스인들의 ‘르 몽드 마니아’ 대열에 합류했다.

▷르 몽드에도 약점은 있다. 올 2월 ‘르 몽드의 숨겨진 얼굴’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돼 수십만 권이 팔렸다. 저자들은 영향력 확대를 위한 뒷거래, 좋아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비밀지원, 경영실적 허위 공표 등 갖가지 비리를 공개했다. 르 몽드는 거짓말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르 몽드 기자 출신인 저자들의 고발은 프랑스 최고 신문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켰다. 4일자 한국 언론 상황 보도도 르 몽드의 권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르 몽드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3개 메이저 신문이 정치 및 경제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자들은 면세 혜택을 받고 편향된 정보에 의존한다고 왜곡 보도를 했다. 외국 현실을 잘 모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기에는 세계적 권위지라는 르 몽드의 이름이 아깝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