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95>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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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칼과 영광- 鋸鹿의 血戰(3)

"네 늙은 목은 내 것이다!”

다시 말머리를 돌린 항우가 그렇게 외치며 말 위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소각(蘇角)을 보검으로 내리쳤다. 투구를 쪼갠 항우의 보검이 그 등판까지 깊이 갈라놓자 소각은 구슬픈 비명과 함께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항우가 잠깐 동안에 저희 대장과 부장(副將)을 모두 베어버리자 소각의 군사들은 뱀 만난 개구리 마냥 온몸이 굳어버렸다. 말문마저 막혀 잠시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항우가 다시 그들을 덮쳐가며 강동병들을 뒤돌아보았다.

“무엇들 하는가? 어서 와서 소각의 목을 주워라!”

그 말에 그때까지 형세만 살피던 강동병들이 함성과 함께 앞으로 밀고 나왔다. 그 함성소리에 소각의 군사들이 퍼뜩 깨어나 보니 어느새 항우가 시퍼런 철극(鐵戟)으로 바꿔 들고 양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저희 중군(中軍)을 짓밟고 있었다. 그 뒤를 받치듯 밀고 들어오는 것은 그 며칠 사이에 그 매운 맛을 톡톡히 본 초나라 강동병들이었다.

게다가 항우 뿐만 아니라 강동병들도 투구를 쓴 장수들만 노려 치고 드니, 진군(秦軍)은 도대체가 지휘선(指揮線)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더욱 혼란스러워진 소각의 군사들은 한번 맞서볼 엄두도 내보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벌써 무기를 내던지고 땅에 주저앉아 항복의 뜻을 나타내는 군사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항우와 강동병들은 그런 항병(降兵)들을 못 본 척하며 모질게 진군을 몰아 부쳤다. 한식경이나 진군들을 뒤쫓으며 베고 찔러 들판을 시체로 벌겋게 뒤덮은 뒤에야 그들은 비로소 창칼을 거두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질려 뻣뻣이 굳은 항병들을 그대로 버려둔 채 섭간(涉閒)의 군사들이 있는 쪽으로 몰려갔다.

그때는 섭간도 뜻하지 않은 초군의 강습(强襲)을 받아 겨우 겨우 버텨내고 있는 중이었다. 경포의 단병(短兵) 도전을 받아 쩔쩔 매고 있는데 항우와 강동병들이 한 덩이가 되어 몰려들었다. 먼저 놀란 사졸들이 무너져 달아나기 시작하고, 그러잖아도 각기 다른 초나라 장수들을 맞아 몰리고 있던 섭간의 부장들이 그 뒤를 따랐다.

(틀렸다…)

섭간은 그런 느낌으로 아뜩한 가운데도 이를 사려 물었다. 그럴수록 냉철해지지 않으면 한 목숨 건지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섭간은 싸움터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섭간이 있는 힘을 다해 큰칼을 휘두르자 기세 좋던 경포의 도끼질이 주춤했다. 섭간이 더욱 힘을 더해 경포를 몰아댄 뒤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징을 쳐라. 모두 물러나라. 오늘 싸움은 이만 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달아나면서 또 한번 크게 외쳤다.

“모두 왕리 장군에게로 간다. 왕리 장군의 진채에서 만나자!”

그런데 바로 그때 북쪽 들판에서 부옇게 먼지가 일며 한 떼의 인마가 밀고 내려왔다. 왕리가 보낸 3만의 구원병이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무너져 쫓기는 진군(秦軍)이었다. 약간의 구원병이 왔다고 해서 되돌아서서 싸울 기력이 남아있지 못했다. 멋모르고 달려온 3만 구원병만 그대로 초군(楚軍)에게 돌진했다가 쇠몽둥이 만난 질그릇 꼴이 나고 말았다.

소각과 섭간에 이어 왕리의 구원병까지 쳐부수자 어지간한 초나라 군사들도 지쳐 늘어졌다. 용도를 사이에 둔 그 이틀간의 싸움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돌이켜보기에도 끔찍한 혈전이었다. 이틀 동안 네 번의 큰 전투를 치러 7만이 채 못 되는 군사로 15만 가까운 대군을 흩어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구원병으로 3만을 떼어보냈다 해도, 쫓겨간 소각의 졸개들과 섭간의 군사들이 다시 보태져 왕리는 아직 15만이 넘는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병력은 거록성(鋸鹿城)을 에워싸고 있던 장함군의 주력이었다.

“여기서 싸움을 멈추고 사람과 말을 며칠 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행히 적에게서 빼앗은 군량과 군막이 넉넉하여 장졸들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이 재울 수가 있습니다.”

달아나는 진군을 뒤쫓다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항우에게 계포가 그렇게 말했다. 항우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섭간과 왕리에게 숨돌릴 틈을 주어서는 아니 되오. 이 기세로 밀고 나가 왕리의 중군(中軍)을 짓밟고 거록을 포위에서 풀어주어야 하오.”

“장수와 군사들이 모두 지쳤을 뿐만 아니라 다친 자도 많습니다. 그런 그들을 무리하게 내몰다 낭패를 볼까 걱정입니다.”

“적병은 우리의 두 배가 넘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싸워온 것들보다 더 조련이 잘 되어있고 기세가 날카롭다. 우리가 쉬는 사이에 저들이 차분히 채비를 갖추게 된다면 싸움은 전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그때 뒤따라 온 범증이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갑옷을 걷어 부치고 급히 달리기를 밤낮을 쉬지 않고, 길을 배로 늘여 백 리를 멀리 돌아 선제(先制)의 이득을 취하려 하면, 오히려 세 장군이 적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군사들 중에 건장한 자는 먼저 가고 지친 자는 뒤떨어져서 선제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때에 도착하는 자는 열에 하나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바삐 행군하여 50리 먼 길로 선제의 이득을 얻으려하면 상장군(上將軍)이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선제의 이득을 얻을 시간에 도착하는 군사는 반을 크게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손무자(孫武子)가 한 말인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두 배가 넘는 적병에게 숨돌려 맞설 채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또 어쩌시겠오?”

“우리 편도 7만 뿐은 아닙니다. 이 거록의 들판에는 진작부터 여러 갈래의 제후군이 와 있습니다. 진군의 날카로운 기세에 눌려 눈치만 보고 있었으나 이 며칠 우리의 분투로 이제는 싸워볼 엄두라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서준다면 우리는 진군에 비해 머릿수에도 크게 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장군께서 오늘 소각을 죽이셨던 기세로 왕리의 본진만 짓밟아 놓으실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볼만한 싸움입니다.”

그제야 항우도 머리를 끄덕이며 군사들을 쉬게 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쉬고 있는 그 며칠 사이 범증은 사람을 풀어 숨어있는 제후군들을 찾아보게 했다.

비록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저희 진채에 깊이 처박혀 있었지만 다른 제후군들에게도 눈과 귀는 있었다. 초군의 잇따른 승리에 적잖이 기세가 살아나 웅성대다가 사자가 오자 반갑게 맞아 들였다. 그리고 당연한 듯 범증이 항우의 이름을 빌려 내린 명을 받들었다.

아비 장이(張耳)가 여러 달 거록성 안에 갇혀있어 답답한 장오(張敖)와 조나라 대장군 진여(陳餘)는 항우와 남북에서 호응하여 바로 왕리를 들이치기로 했다. 성안의 조군(趙軍)도 때가 되면 뛰쳐나와 왕리를 뒤에서 덮치기로 되어 있었다.

제나라 장수 전도(田都)가 이끄는 군사들은 다른 제후군들과 극원 북쪽에 진을 쳤다. 장함이 대군을 몰아 구원 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몇몇 제후군은 항우를 따라주지 않았으나 두려움을 떨치고 누벽(壘壁)밖으로 나와 오락가락 하는 것만으로도 왕리의 군사들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항우와 왕리의 격돌은 용도(甬道)를 가운데 둔 싸움 뒤로 사흘 만에 있었다. 이번에는 용도가 끊겨 군량과 병참에 위협을 받게 된 진군(秦軍) 쪽이 먼저 움직였다. 왕리는 섭간과 소각의 패잔병을 받아들여 다시 15만으로 부풀어 오른 대군을 항우가 이끈 초군 앞으로 집중시켰다.

비록 승세를 타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눈앞의 적이 머릿수가 많으니 초군(楚軍)은 다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합세하기로 했던 제후군(諸侯軍)까지 다시 겁을 먹고 머뭇거리니 초군의 기세는 한층 말이 아니었다. 진군이 전력을 들어 밀고 들면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그때 항우가 오추마에 높이 올라 보검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우리 초나라의 명운 뿐만 아니라 그대들의 생사도 오늘 이 싸움에 달려있다. 나와 8000의 강동자제(江東子弟)들은 앞서 나가 한 사람이 적병 열 명을 맡겠다. 뒤따르는 그대들은 적병 하나씩만 맡으라. 그리되면 우리가 질 까닭이 없다!”

조나라 군사들뿐만 아니라 들판 저쪽 진군들에게도 다 들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항우가 그러면서 말을 박차 달려나가자 강동병들이 씩씩한 함성으로 새로운 각오를 드러내며 그 뒤를 따랐다. 뒤이어 남은 초병들이 달려나가 그날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앞서의 어떤 것보다 끔찍한 싸움이었다. 워낙 머릿수에서 밀리는 초군이었으나 차츰 투지와 기세가 그 모자람을 채워 갔다. 특히 8000 강동병은 그야말로 피를 뒤집어쓴 악귀(惡鬼)같은 모습으로 한 덩이가 되어 왕리군의 중앙부를 종횡으로 갈라놓으니, 그 집중이 아무런 효력을 낼 수 없었다.

저희 편이 형편없이 짓밟히는 것을 보다 못한 왕리가 징을 쳐서 군사를 거두었다. 초군의 힘든 승리였다. 들판 가득 버려진 시체는 모두 진군의 것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초군에게 제대로 숨 고를 틈도 주지 않고 곧 두 번째 진군(秦軍)의 물결이 쏟아져 나왔다. 공격하는 쪽은 병력이 넉넉해 새로운 군사들을 투입하였으나 막는 쪽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쉬고 있던 자리에서 피묻은 창칼을 들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그날 왕리는 무려 세 번이나 대군을 집중하여 밀어 부쳤으나 항우는 잘 막아냈다. 무예에서도, 전투 감각에서도, 투지에서도 실로 초인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항우 뒤에는 초나라 사람 특유의 기질로 한껏 달아오른 8000 강동병이 있었다. 자극받고 고양되면 잠재력의 마지막 한줌까지 짜내 기적과도 같은 분발을 연출하는 게 남방 초나라 사람들의 기질이었다.

해질 무렵 마지막 공격에서도 전세를 뒤집지 못하자 마침내 왕리는 군사를 물렸다. 그날 밤이었다. 모진 싸움을 잘 버텨낸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쉬게 한 다음 항우가 장수들을 군막으로 불러모았다.

“오늘 모두 잘 싸웠소. 그러나 이런 싸움은 군사와 물자를 써 없애게 하는 싸움[소모전]이라 필경에는 군세가 약한 쪽이 견딜 수 없게 되오. 오늘은 버텼지만 실로 내일이 걱정이오. 이러한 국면을 전환시킬 묘책은 없소?”

항우가 낮의 투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얼굴로 장수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모두 서로를 바라볼 뿐 얼른 대답이 없는데, 범증이 일어나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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