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대통령도서관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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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1940년 루스벨트 대통령도서관을 시초로 대통령 퇴임 후 기념도서관 설립이 전통으로 확립됐다. 현재 케네디, 카터, 부시, 레이건 대통령 등 10여명의 전직 대통령도서관이 건립돼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주지사를 지냈던 아칸소주 주도(州都) 리틀록의 아칸소 강변에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대통령 센터’를 짓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박물관 강의실 전시장 등이 들어설 이 건물을 짓는 재원 조달을 위해 최근 35달러짜리 요리책을 펴내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이 ‘도서관(Library)’이라고 이름을 붙인 데 비해 ‘대통령 센터’라고 한 것이 눈길을 끈다. 클린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혹시 ‘거짓말관(Liebrary)’으로 불리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비아냥거리는 모양이다. 55세에 백악관을 나온 클린턴은 기념도서관 일만 챙기지 않고 민주당에서 막후 조정 역할을 하는 등 현실 정치에도 개입하고 있다. 부인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시키는가 하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한 동향(同鄕)의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군사령관을 지원한다는 소문이다.

▷우리나라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 이래 8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지만 대통령도서관은 아직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을 기념도서관 형태로 바꾸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사회 일각의 반대가 여전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벌들로부터 돈을 걷어 일해재단을 만들었다가 물의를 빚자 국가에 헌납했고 그것이 오늘의 세종연구소가 됐다.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호화생활을 하다 비난을 받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작은 도서관 하나 건립하기가 어려울 듯싶다. 아무튼 전직 대통령들이 독재자로 평가되거나 사법처리되는 바람에 대통령 기념 도서관 하나 없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다.

▷연세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부한 아태재단을 ‘김대중 도서관’으로 명명해 11월 3일 개관한다. 김 전 대통령 집권기간 내내 구설수가 잇따랐던 아태재단을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으로 전환한 것은 그나마 잘한 선택 같다. 3일 개관식에는 국내 외교사절, 김대중 정부 시절 고위 관료들이 초대받는 반면 현역 정치인은 초청 대상에서 빠졌다고 한다. 민주당과 통합신당이 갈라서는 바람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의 운신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최초로 기념도서관을 갖게 된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게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길일 것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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