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안경의 문화사'…'안경' 언제 권위를 벗었나

  • 입력 2003년 9월 26일 17시 39분


코멘트
◇안경의 문화사/리차드 코손 지음 김하정 옮김/326쪽 1만2000원 에디터

15세기의 한 성화(聖畵)를 보면 성 베드로가 안경을 눈에 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3세기 후반에야 발명된 안경을 AD 1세기 인물인 성 베드로가 끼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15세기의 안경은 책을 가까이 접하는 소수의 특권층에만 허용된 것이었고 지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안경을 쓰거나 들고 있는 모습으로 성자를 그린 것은 존경의 표현이었다.

저자는 안경의 변천사를 수많은 문헌과 그림을 통해 세기별로 정리했다.

초기 안경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시력이 떨어지면 제자를 시켜 책을 읽게 한 중세 수도원의 학자 등 지식인에게 안경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책을 읽는 용도이니 만큼 에메랄드 크리스털 등을 볼록렌즈로 깎은 원시(遠視)용 안경이었다.

15세기 말에는 안경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고 16세기 초에 이르면 근시(近視)용 안경도 제작됐다. 17세기의 안경은 확실히 실용적 가치보다 위엄을 표시하는 상징물이었다. 1679년 한 백작 부인이 마드리드에서 쓴 편지에는 “몬테론 후작 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거기에 모인 젊은 귀부인들이 대부분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책을 읽을 때는 쓰지 않다가 수다를 떨 때만 써서 깜짝 놀랐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18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귀에 걸 수 있는 다리 달린 안경이 등장했고 19세기엔 외알안경, 코안경 등 다양한 디자인이 선보였다.

안경의 극적인 변화는 20세기에 이뤄졌다. 안경은 더 이상 특별한 상징이 아니라 필수품으로 여겨졌고 안경 쓰는 걸 꺼려하던 풍조도 사라졌다. 1940년대에는 콘택트렌즈가 보급됐고 시각장애인의 상징이던 어두운 색 안경은 선글라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51년엔 최초의 안경 패션쇼가 열리고 얼굴형, 코의 높이, 눈 색깔, 옷, 액세서리에 어떻게 안경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각 매체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안경은 ‘보는 것보다 보여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다룬 시기가 1960년대에서 끝나, 이후 30여년의 안경 역사가 공백이라는 점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